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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Jan 27. 2021

삶의 땔감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유학생의 일기

걷잡을 수 없는 걱정과 불안에 휩싸이게 될 때 그 심연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앞날에 대한 부정적인 예측이 숨어 있을 때가 많다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해도 그 속에 긍정적인 예측이 포함된다면 사실 그리 불안하지 않다. 결국에는 다 잘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으면 지금의 상황이 좋지 않아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임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마도 잘 안 될 것 같다는 부정적인 예감이 불확실한 미래와 결합하는 순간, 불안과 걱정은 폭발적인 힘을 갖게 된다.


최근 몇 주간 불안감에 시달렸다. 막상 학기가 한창 진행 중일 때에는 잠잘 시간도 부족할 정도로 바쁘다 보니 그런 감정을 느낄 새도 없는데, 아직은 학기 초라 그런지 여유 시간이 남았던 내가 너무나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근심'이었던 것이다...


최근 즐겨 보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이런 대사를 한다. 자기는 미련을 연료로 삼아서 살아본 적 없다고 (정확한 워딩은 기억 안 나는데 이런 류의 대사였음!). 그 대사를 듣고 나도 잠깐 생각에 잠겼었다. 나는 무얼 연료 삼아 살고 있지?


돌이켜 보면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과거의 내가 내린 결정의 반대편을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회사를 다닐 때에는 취직하지 않고 쭉 대학원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고, 퇴사 후 다시 대학원에 돌아왔을 땐 또 반대로 퇴사하지 않고 쭉 근무 중인 나를 상상했다. 유학을 가기로 하고 다시 박사 과정을 시작한 지금은 또다시 유학을 가지 않은 상황의 나를 가끔 상상한다. 그것이 결코 좋은 삶의 태도가 아님을 잘 알면서도.


그래서 최근의 내가 연습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을 믿는 연습이다. 과거의 내가 내린 결정은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스스로에게 틈날 때마다 말해준다. 내 자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가장 아끼는 내가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이니 이게 정답이라고 되뇐다. 사실 회사에도 학교에도 몸 담아보니 이 세상에 쉬운 일도 쉬운 길도 없고 어떤 선택을 해도 어려움이 닥치면 후회되는 건 매한가지더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대학원 생활도 비슷한 맥락에서 결국 나 자신을 얼마나 잘 믿고 의지해나가느냐의 싸움인 것 같다. 내가 부진하게 느껴질 땐 교수님들이 날 왜 뽑은 건가 의아하게 생각되기도 하고 졸업은 할 수나 있을까 절망의 나락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선배들에게 했을 때 돌아왔던 대답들은 모두 ‘나도 그랬다’는 것이었다. “첫 학기 때 다른 선배의 박사 논문 심사를 보게 됐는데 보고 나서 와 나는 이거 할 수 없다 이만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 “너를 못 믿는 건 널 뽑은 교수님들을 못 믿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분들이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뜻이니까, 그러니 그런 말 마, 너는 충분히 뽑힐 만한 사람이야.”


그래서 요즘은 생각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아니 이 어려운 논문을 다 읽다니 대단한데? 영어로 질문을 다 하다니 기특한데? 교수님 말을 알아듣고 대답을 하다니 멋진데?


그러니 너는 분명히 잘될 거야!


불안과 염려에 녹아내리지 말고 내 삶의 땔감으로 삼아서 살자. 부정적인 예감에 압도당하는 대신 그 예감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지. 과거의 내가 한 모든 것들을 믿으며, 잘했다고 칭찬해주면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내가 또 칭찬할 거리가 생기도록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 현재의 나도 열심히 차곡차곡 시간을 쌓아 나갈 테다. 흔들리지 않을 순 없겠지만 그 흔들림의 횟수와 깊이가 점점 더 얕아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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