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안지를 찾는 이들에게
이번 주 유퀴즈에 유명 대기업 직원이었다가 기자였다가 슈퍼모델에 이어 연기자의 삶을 살고 있는 연예인이 나왔던 모양이다. 그분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나도 분야와 분야를 오가는 선택을 했던 터라 주변 사람들이 '이번 주 유퀴즈 봤냐'며 대화하는 것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내 지난 시간들을 떠올렸다.
내 첫 직장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알 법한 곳이었다. 한 달 남짓 되는 상당히 짧은 구직기간 끝에 들어간 첫 직장에서 사회 초년병이었던 나는 서툴기는 했지만 곧잘 업무에 적응했고 퇴사할 때 즈음에는 인사고과도 좋은 편이었다. 팀원들도 모난 사람 없이 분위기도 좋은 편이었고, 업무도 성향에 맞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채 3년을 채우지 않고 퇴사했고 유학을 갔다. 정확히 말하면 유학을 가려고 도전했다가 보기 좋게 실패하고 2년 정도 공백기를 가진 후 다시 도전해 유학길에 오르게 됐다. 퇴사도, 유학도, 당시에는 나름 고심해서 내린 결정이었는데도 나의 이런 과거사(?)를 듣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그 결정들이 가진 무게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던 걸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부모님 어깨에 힘 좀 들어가게 하는 그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곧잘 '집이 부자인가 보지?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다니', 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그 정도로 공부가 하고 싶었냐' 내지는 '그 정도로 회사가 다니기 싫었냐'라고 묻기도 했다. 일주일이 매일 같이 행복하지도 매일 같이 불행한 것도 아니듯 회사 생활도 날씨로 치면 흐린 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었지만 전반적인 내 직장 생활은 괜찮았다. 다만 이렇게 내 평생을 직장에서 이 일을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상사들의 모습이 곧 나의 10년, 20년 후 모습일 텐데, 그분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남은 생을 저렇게 늙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유학을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창 남들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하는 시기에 유학이라니 정말 큰 결심 했다'는 말을 들었다. 미국에 가져갈 물건들을 사려고 들른 마트에서 유학 간다는 내 얘길 들은 계산원도 '고생하시겠네요!'라는 말을 서슴 없이 내뱉을 정도로, 유학이라는 키워드를 들은 사람들이 내게 해주었던 이야기들의 90%는 '외롭겠네', '결혼은 글렀네', '힘들겠다', '고생하겠다'였다. 그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긴 하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들이었기에 더 뼈아프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심지어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생전 처음 만나 옆자리에 앉은 한 할아버지는 짧은 대화를 나누다가 '유학 간다'는 내 말에 생면부지인 사람인데도 100달러 지폐를 건네주려 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돈을 받는 건 경우가 아닌 것 같아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지만 '이렇게 낯선 사람이 선뜻 거금을 쥐어주고 싶어 질 정도로 내가 한 결정이 굉장한 도전이고 고행길의 시작인가' 싶어 시작도 하기 전에 마음이 오히려 더 무거워졌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도전과 이주를 거듭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퇴사 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당연히 내 대답은 '아니오'다. 후회한 적이 당연히 있었다. 유학 첫 도전에 실패했을 때 가장 크게 후회했던 것 같다. 퇴사까지 하면서 배수진을 쳤건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에 후회했었다. 두 번째 도전 끝에 유학에 성공한 지금도 과거의 선택들에 대해 후회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어차피 어떤 선택을 해도 1년 365일 행복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힘든 날에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회사를 다닐 때 상사에게 된통 깨진 날에는 '이럴 바에야 그냥 학교에 쭉 있을걸' 후회했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 이후에는 불확실한 미래가 걱정될 때 '그냥 월급쟁이로 쭉 살걸' 후회했다. 내가 좋아서 한 선택도 궂은일이나 싫은 일을 해야 할 때면 그냥 이거 하지 말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예전에 스타트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스타트업을 하면서 해야 하는 일들을 100이라 하면 그중 정말 좋아하는 이 일을 하는 것은 10% 정도이고 나머지 90%는 정말 하기 싫은 일들을 해야 한다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죽어도 하기 싫은 일들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데, 그게 싫거나 고통스러우면 스타트업을 계속할 수 없다고.
따지고 보면 연구도 마냥 즐겁고 행복한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주제를 생각해내고, 그와 관련된 선행연구들을 살펴보고, 거기서 조금 응용해 나만의 가설과 그를 증명한 실험을 그려내고, 실험을 진행하고 결과를 얻어 분석하고, 마침내 거기서 얻은 결론을 글과 시각적인 장치들로 풀어내 학술지와 학술대회에서 선보이는 것. 대학원에서 만나는 친구들도 가만 보면 어떤 친구들은 연구주제 도출에 강한 애들이 있는 반면 어떤 애들은 실험을 유독 잘하고, 또 어떤 친구들은 다른 건 다 그저 그런데 결과 분석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애들도 있다. 나의 경우는 실험을 할 때와, 다 끝난 결과물을 글로 옮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잘하는지는 모르겠다). 석사 논문을 쓸 때도 논문 작성에 들이는 시간의 90%는 괴롭고 힘들고 '대체 내가 이걸 왜 하기로 했나' 하는 생각을 곱씹게 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다는 것, 논문의 모든 것을 철저히 저자인 내 마음대로 구성하고 조립한다는 것이 그 나머지 10%의 희열을 안겨주었다. 그 10%가 나머지 90%의 힘듦을 뛰어넘고도 남았기에 석사 논문을 썼던 마지막 학기는 내게 상당히 즐거웠던 시절로 남아 있다. 학점을 채우고 과제를 하느라 발을 동동거리지 않아도 되고 평온하게 내 논문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하는 순간은 오고야 만다는 것이 지난 10년간 얻은 첫 번째 깨달음이었다면, 박사 과정을 시작한 이후 내가 얻은 두 번째 깨달음은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정형화된 공교육 시스템에서 처음으로 벗어났던 대학교 1학년 이후의 나는 늘 무엇이 정답일까 생각했다. 제대로 된 트랙 위를 달리고 있는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스로에게 물었고 조금이라도 비켜나 있는 건 아닌지 양옆으로 달리는 사람들을 곁눈질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틀린 결정을 내린 것 같을 때에는 바로 방향을 틀어 지난 결정을 번복하려 했다. 그렇지만 몇 번의 번복을 거치고 난 지금에 와서야 나는 안다. 인생의 정답은 당사자인 나를 비롯해 이 세상 누구도 모른다는 것을. 이 길이 맞는 트랙인지는 심지어 같이 달리는 사람들 중 아무도 모른다는 것. 더 놀라운 건 동일한 트랙을 달리는 사람은 알고 보니 한 명도 없었다는 것!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사소한 결정들이 쌓여 현재를 이루고, 지금 내게 닥치는 일들에 대해 기꺼이, 그리고 묵묵히 '책임'을 지며 살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내가 한 선택은 그 당시에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믿는 것.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