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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Jul 26. 2021

나는 네가 아니듯이 너도 내가 아니다

관계에서 오는 부정적인 감정들 극복하기

한 사람의 인격이나 내공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그 사람의 인생에 누가 봐도 위기라 할 만한 큰 역경이 닥쳤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일상에서 흔히 마주하는 사소하지만 짜증 나는 순간들인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신경을 거스르는 무언가와 맞닥뜨릴 때야말로 거사를 앞두고 마인드 컨트롤을 할 수도 없고, 경험이 많은 타인에게 조언을 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그렇게 순간적으로 짜증이 나거나 기분이 상하는 상황에서 일단 멈춘 후 잠시 숨을 고르고 대체 무엇이 내 기분을 그렇게 상하게 만들었는지 가만히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적지 않은 경우는 그 원인이 외부가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함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자존감의 문제일 수도 있고, 바로 며칠 전에 겪은 다른 일을 연상시키는 것일 수도, 혹은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유년기의 상처와 연결된 것일 수도 있다. 오늘 내가 경험한 그것은 사람을 너무 잘 믿고 쉽게 정을 주는 내 성정과 잇닿아 있었다.


우리가 서운함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대상은 전혀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가깝고 친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내게 애정으로 대할 거라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처음부터 아무런 기대가 없기에 실망하거나 서운할 것도 없지만, 나와 가깝고 내게 (당연히) 어느 정도 마음을 베풀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기대가 큰 만큼 실망할 여지도 많아지기 때문이겠지.


생각해 보면 피가 섞인 가족이라 해도, 아니 하물며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만 해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데,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게서 내 바람대로 움직여주길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크게 잘못된 생각인지도 모른다. 아니, 잘못된 생각이 맞다. 내가 너에게 이만큼 정과 관심을 주었으니 너도 이만큼 주어야 맞지! 이 생각이야말로 관계에 위기를 가져오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아닐까.


하지만 이건 정말 이른 아침에 그 일을 마주한 직후 몇십 번이고 그 일을 곱씹으면서 반성과 분노의 쳇바퀴를 반복하고 나서야 다다른 결말이었다. 정작 그 순간의 나는 욱하고 올라오는 짜증과 서운함을 극복하지 못했고 그 덕분에 아침부터 그만 뾰족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쏟아진 물. 흘러 흘러 가시 돋친 물방울들이 상대에게 전해졌을 것을 상상하니 이제 해가 저물기 시작한 초저녁이 되었음에도 마음 한 켠이 여전히 무겁다.


수년 전 체코 여행을 갔을 때 길에서 우연히 구경했던 꼭두각시 인형극은 어지간한 프로가 아니고서야 그 기다란 실에 매달린 인형의 팔과 다리를 내 것 마냥 다루기는 어려워 보였다. 거의 분신처럼 인형을 움직이는 현지인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던 나를 생각한다. 나는 타인이 아니듯이 타인도 내가 아니다. 가끔 나조차도 내 마음을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이 내 맘을 알아주길 바라는 건 욕심이고 교만일 것이다. 사람이든 세상이든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자. 기대가 없으면 그만큼 기쁨도 크고 설렘도 크고 놀라움도 커질 것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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