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을 보며
개막 전부터 역대급으로 말 많았던 올림픽이지만 그래도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역시 스포츠만한 최고의 드라마는 없는 듯하다. 어린 나이에 진검승부를 펼치는 전 세계 최고 기량의 선수들을 보면서 열대야가 웬 말이냐는 듯 모두 열심히 응원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귀엽기까지 하다.
주말 저녁 축구 야구 배구까지 동시 중계를 하니 채널 돌리기 바빴지만 결국 배구에 채널을 고정했다. 한일전은 이유 불문하고 이겨야만 하는 국민 정서상 시작부터 긴장감이 팽배했던 오늘 경기는 두 팀의 실력이 비등해 누가 이겨도 납득이 갈만한 최고의 접전을 보여주었다.
올림픽이 그 오랜 고대 그리스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승부가 마치 우리 삶과 비슷하기 때문인 것 같다.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하다 일본이 단 1점만 더 따면 지게 되는 위기의 상황, 아 결국 이렇게 아쉽게 지나 보다 싶었던 5세트 중반, 김연경 선수를 필두로 우리나라 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네트를 지켜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만히 거실 소파에 앉아 편안한 자세로 지켜보는 나도 이렇게 심리적으로 지치는데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은 오죽했을까? 아 정말 이제 끝인가 봐 이대로 지는 건가 봐 싶었던 그 순간에 정작 현장의 우리 선수들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역전 끝에 16점을 내고 승리하는 장면은 최근 보았던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도 더 극적이고 감격스러운 장면이었다. 아무리 승리가 간절해도 마지막 5세트에서 한 번에 15점을 내서 경기를 끝낼 수 없듯, 인생도 매 순간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인생의 성취를 이루는 중요한 지점에 다다르게 되는 것 같다.
1세트에서 이겨도 2세트에서 지고 또 그다음 세트에서 다시 이겨도 4세트에선 또 졌던 오늘 경기처럼 인생에도 오르막이 있을 때가 있고 내리막이 있을 때가 있다. 사는 동안 늘 성공만 할 수 없고 성취만 할 순 없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하기 힘들어 괴로워했다. 학업을 해나가면서 겪어야만 하는 ‘나는 부족한 사람이구나’라는 깨달음의 순간들을 나는 자책과 자기 연민으로 곧잘 우울하게 보내곤 했다.
그런데 역전승을 일구어내는 오늘 배구 경기를 보면서 마음에 큰 울림이 일었다. 마지막 15점으로 역전을 하고 16점까지 1점만 남겨둔 상황이 되었을 때는 이미 승패는 상관없고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치열하게 싸운 대표팀 선수들 한 명 한 명이 너무 기특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지든 이기든 이미 한 점 한 점 최선을 다해 싸운 그 모습이 승자의 모습이었다. 삶은 그런 것인데.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진심으로 임하면 되는 것인데 나는 이 타국 땅에서 뭐가 그렇게 두려워 주저했을까.
인생에는 부침이 있어 때로는 패색이 짙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파죽지세로 연승을 이룰 때도 있다. 내 인생에 대한 모든 평가와 판단은 죽은 후로 미루기로 한다. 나는 아직 살아있고 그래서 내 삶이라는 이 경기는 아직도 한참 진행 중이고 마지막 16점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누구도 결말을 장담할 수 없다. 연구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나는 끊임없이 학자로서의 내 자질에 대해 의심하고 자학했지만 더 이상 그런 조금 어그러진 동그라미 같은 하루에 얽매여 내일 한 번 더 동그라미 그릴 기회를 버리지 말자. 1점 잃었어도 그다음 1점을 따면 동점이 된다. 이번 세트에서 져도 다음 세트에서 이기면 된다.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란 언제까지나 있는 것. 올림픽을 보며 이렇게 또 한 번 인생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