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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Feb 20. 2022

돌아가신 교수님을 기억하며

지난달에 별세하신 교수님을 기리는 추모 행사가 오늘 낮에 있었다. 학과 내에서 가장 연세 많으신 (그리고 별세하신 교수님과 가장 가까운 동료였던) 교수님께서 진행하시고 코로나 시국인 만큼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덕분인지 전 세계에 흩어진 교수님의 제자들과 동료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모여서 90여분 동안 그분을 추모했다.


교수님은 알고 보니 꽤나 감수성이 풍부한 분이셨던 모양이다. 기껏해야 지난 학기 그분 수업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었던 나는 사실 그분에 대해 아주 유명한 학자라는 사실을 빼고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는데, 오늘 추모 행사에서는 그분의 학문적인 업적 외에도 생전에 쓰셨던 시들과 좋아하셨던 영화, 책들의 일부분을 그분의 제자들, 이전 동료들, 그리고 현 우리 학과의 동료들이 돌아가며 읊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교수님은 70년대 중반에 박사 학위를 따셨다고 한다. 당시 같이 대학원 생활을 했던, 지금은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님들이 그분을 회고하며 박사 과정 동안 있었던 일들을 늘어놓으실 때는 간혹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학창 시절엔 늘 말썽꾸러기였고 교수님들에게 예상치 못한, 그렇지만 기발한 질문들을 던져 늘 당혹스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셨다고 한다. 내가 본 교수님의 마지막 모습은 힘없고 왜소한 노인의 모습이었는데 젊고 건강했던 시절의 그분은 아주 당차고 재치가 넘치며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을 하고 계셨다.


20대 때에는 군 복무를 하셨고 미국은 군인들에 대한 대우나 혜택이 아주 좋은 나라에 속하지만 그분은 나보다 전쟁터에서 더 고생한 이들을 위해 이 혜택을 다 받을 수 없다며 거절하기도 하셨단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직전 마지막 몇 주 동안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마치 마지막을 직감한 듯한 편지들을 보내셨다고도 한다.


거의 2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그분과 얽힌 에피소드, 그리고 자신들이 얼마나 교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를 이야기하는데, 교수님은 정말로 행복한 분이셨구나, 정말로 사랑받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20대 한창나이 때부터 막 교수로 부임한 시기, 이후 한창 지도학생들과 전 세계 학회를 다니던 시절,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사진들이 화면에 띄워졌는데 내가 본 최근의 얼굴과는 너무나 다른, 정말이지 반짝거리는 젊은 나이의 교수님을 보면서 신기하기도, 먹먹해지기도 했다. 웃는 인상이 너무나 좋으시고 누가 봐도 영민함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무기력이나 병마의 기운이라고는 조금도 느낄 수 없는 자신만만하고 기세 등등한 표정들, 그리고 인자한 미소. 모든 순서가 끝나고 마지막에는 그분이 생전 가장 좋아하셨다는 팝송을 배경 삼아 그분의 연대기가 담긴 사진들이 스치듯이 지나갔는데, 그 짤막한 영상을 보는 내내 채 일 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그분을 겪은 나도 이렇게 먹먹한데 정말로 그분과 오랫동안 알고 지내며 많은 연을 쌓은 이들은 얼마나 슬프고 힘들까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그런데 어떨 때는 그 사실이 정말 너무나 힘들게 다가온다. 가까운 사람들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명을 달리 할 때가 그렇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뭔가 생전에 정말 잘 나가다가 갑자기 세상을 뜬다든지 병에 걸려 예전처럼 살 수 없다는 소식을 들을 때도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아등바등하면서 사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고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 별세 소식을 듣고 밤에 불을 켜 두지 않고는 잠들기 힘들어했던 것도 어느새 나아져서 이제 나는 불을 끄고도 잘 잔다. 지난주에는 그 일 이후로 근 한 달 여만에 내 연구실에서 저녁때까지 홀로 있었다(물론 건너편 방에 다른 동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예전처럼 캄캄한 밤에 혼자서 있는 건 아직도 힘들다). 개강 직전에 그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학과 식구들 모두 원하든 원치 않든 마치 재활훈련을 하듯 학과 내 곳곳에 흩뿌려져 있는 그분의 흔적과 마주해야 했고 다행히도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많이 회복된 듯하다.


사는 동안 많은 업적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죽을 때에는 아무것도 들고 갈 수 없기에 지금 누리는 것을 충분히 누리고 맛있는 것을 먹고 잠을 잘 자야 한다. 그리고 오늘 그 교수님처럼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마지막 소식을 들었을 때 진심으로 슬퍼하고 지나간 시절의 내 모습을 기억하며 우리 사이에 있었던 해프닝들을 이따금 떠올려줄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썩 괜찮은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사 과정을 하면서 학자도 학자이지만 나는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삶을 바라볼 태도를 이곳에서 비로소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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