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annie Jun 03. 2022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요

타지 생활이 슬퍼지는 순간

가을학기 개강 직전인 8 중순에 출국하려던 계획을   정도 앞당겨 7 말에 출국하기로 했다. 그거 몇 달 있었다고 그새 미국에서의 공부 환경에 적응한 탓인지 갑자기 바뀐 환경에서  집중이   되기도 했고, 친구들도 대부분 7 말에서 8 초에 캠퍼스로 돌아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맞추어 들어가  학기 준비를 하는 편이 좋을  같았다.


사실 지난 학기부터 집중도  되고 연구 흐름도 좋았던 터라 이번 여름 방학에 한국에 들어오지 말고 그냥 미국에서 이 흐름을 타서 작업할까 생각도 했었다. 그렇지만 거의 1 가까이 타지에 나가 있는 나를 부모님이 많이 보고 싶어 하셨고, 거의 매일 같이 붙어서 공부하는 절친들도 다들 여름에 본국/본토의 자기 집에 간다고 하길래  혼자 캠퍼스에 남아 공부하면 그건 그것대로  외로울  있겠다는 생각에 잠시 들어온 한국이었다.


출국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인지 다행히 추가 비용 없이 항공권 변경이 가능했고, 변경을 마친 후에 호기롭게 엄마에게 '엄마,  7  나가는 걸로 바꿨어!' 하고 말씀드렸는데, 어라? 어째 엄마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아차, 내가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학업 면에서는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자녀를 타지로 떠나보낸다는 뜻이라는 것을 잠시 망각한 것이다. 나야 하와이로 돌아가면 마음 맞는 친구들도 있고, 날마다 가봐도 넘쳐나는 와이키키 맛집들도 많고, 새롭게 수강할 과목들도 있고, 아름다운 풍광들도 기다리고 있지만, 부모님에게는 그저 우리 딸과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임을 잠깐 잊었다.




며칠 에는 부모님과 가까운 곳으로 외출해 바람을 쐬었는데, 오래간만에 찍은 사진  부모님의 얼굴이 너무나 많이 연로해 계셔서 조금 놀라고 슬픈 마음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건강하고 쌩쌩해서 7 말에 하와이로 돌아가면 이번엔 어디 브런치 카페를 가볼까, 교수님에게 어느 학회에 초록을 제출하자고 말씀드려 볼까 온갖 계획들로 기대가 넘치는데, 연로하신 부모님에게는 기대로 가득한 일상도 없고, 신체 나이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것을 생각하고 있자니 마치 내가 부모님의 기운을  뺏어 먹고 자란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런 슬픈 마음이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강하게 느껴지겠지 싶어 마음이 아파 왔다.


나는 아직 학교에 있기 때문에, 직장에 다니는  또래 한국인 청년들처럼 부모님께 명품백을 선물해드린다든지, 해외여행을 보내드린다든지 하는 경제적으로  선물을 드리지는 못하는 상황이다(예전에 직장 다닐 때 좀 더 많이 해드릴 걸 그랬다.). 다행히도 번듯한 직장도 있고 나보다 먼저 결혼한 동생이 그런 점에서는  미안한 마음을 조금은   있도록 부모님께 가끔 좋은 선물도 해드리고 용돈도 드리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하는 식의 흔한  연령대 한국인들이 사는 것처럼 살지 않아 죄송한 마음이  심연에 깔려 있는 나다.  점이 마음에 걸려 가끔 죄송하다 말씀드릴 때면 '나중에 교수돼서 해주면 되지! 설마   거야?' 하고 농담처럼 말씀하시곤 하는 우리 부모님. 그렇지만 대체 언제?  사이에 부모님은 이미 점점 나이가 들어가시고 있는데, 그걸 생각하면 마음이 자꾸만 조급해진다.


며칠 전 부모님과 다녀온 절 입구에 있던 한옥 카페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다시 어려진다고 했던가. 치매를 앓으셨던 우리 할머니는 마지막이 가까워질수록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시곤 했다. 늘 곁에 붙어 앉아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할머니 멋져요!' '오, 할머니 이거 어떻게 하셨어요' 하고 추임새를 넣어드리지 않으면 금세 삐치셨기 때문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부모님들의 속마음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우리 할머니는 치매를 갖고 계셨기 때문에 그 표현이 여느 분들보다 더 솔직하고 직설적이었을 따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마음이 아파온다. 내 부모님은 갓 태어나 당신들의 손길 없이는 숨도 쉴 수 없는 핏덩이일 때부터 나를 보살펴 주셨는데, 이제 성인이 되어 타지에서 학업을 하고 있는 나는 마치 둥지를 떠난 새처럼 훨훨 날아서 부모님이 사는 이 한국 땅을 벗어나 자꾸만 밖으로 뻗어나가는 것 같다. 입학 초기만 해도 얼른 졸업해서 다시 부모님이 계신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해야지 싶었는데, 미국에서 지내다 보니 연구자들을 대우해주는 이곳 환경이나, 한국에 비해 나이나 성에 대한 구속이 약한(전혀 없다는 뜻은 아님) 문화가 미국에서의 삶이 좋아서 졸업 후에도 미국에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커리어를 생각하면 당연히 그게 좋은 방향이지만 한국에 계신 연로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또 마음에 걸린다. 내가 계속 한국 밖에서 산다고 하면 우리 부모님은 마음 아파하시겠지? 그렇다고 모셔와서 여기서 같이 살기에는 부모님의 삶의 터전은 한국 땅이니, 미국에서 같이 사는 것도 부모님에게는 100% 정답은 아닐지도 모른다.


정답은 없다. 당장 학업을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 아닌 이상 사실 이런 고민은 무의미하다(바꿀  없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가장 쓸모없으니까). 그렇지만 마음이 아픈 것은 어쩔  없다. 자녀와 부모의 관계란  아이러니한  같다. 자녀가 장성해서 은혜를 갚으려  때면 부모님은 이미 저물어 가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어렸을 적처럼 부모님과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신나게 살고 싶은데 말이다. 그저  건강하게 오래오래  곁에 계시길 기도하며, 하루라도 빨리  좋은  같이 다닐  있도록 지금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 그리고 주어진  시간에 소소하지만 행복이 충만한 기억들로 채우는 , 그것만이 최선이다.


그날 점심으로 먹은 막국수. 열심히 찾아 간 맛집이었건만 부모님 입맛에는 별로였던 것 같았다. 흑...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제일 잘 나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