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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민경 Jan 28. 2022

결심은 하등 중요하지 않아

플라피나 <이까짓, 작심삼일>

플라피나의 <이까짓, 작심삼일> 이토록 속이 시원해지는 책이라니. 책장을 덮자마자 밀려오는 후련함과 개운함에 감탄을 연발했다. 1월 중순, 새해 다짐에 대한 부채감이 올라올 때쯤 읽기 시작했다. 다짐이나 결심은 하등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책. 특히 저자는 어린 시절 방학 계획표를 짰을 때 느꼈던 경험을 공유하며 말한다. 어른들이 시켜서 억지로 지어낸 가짜 계획은 그 어떤 성취감도 주지 못했다고.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로부터 시켜서 억지로 만들어낸 계획은 그냥 계획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 저자가 내놓은 해결책은 뭐냐고? 비전을 짧게 가지고, '실행 후 평가' 루프를 짧게 해서 반복하라는 말. 깊이 공감했다. 요즘 내 삶의 기준으로 삶고 싶은 명문을 공유해본다.

1. 실행(Execute) : 멀리 보는 것은 금물입니다. 극단적인 실행주의자가 됩시다.
2. 반복(Iterate) : '실행 후 평가' 루프를 반복하는 걸 '이터레이션'이라 합니다.
3. 강화 (Reinforce) : '이터레이션'에서 결과가 괜찮았던 실행이 있다면 더 자주 실행합시다. 바로 강화학습이죠!


1월은 모름지기 다짐의 달이다. 어디를 가든 새해 계획을 물어보고, 온 우주가 너만 계획을 못 짰다고, 어서 계획을 짜라고 아우성치니 말이다. 그렇게 떠밀려서 계획을 세우고, 어느 순간 하나도 실천 못 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에이, 오늘만 건너뛰자."가 쌓여, 걷잡을 수 없는 실패의 늪에 빠지게 된다. "난 틀렸어... 님들 먼저 가." 이렇게 새해 계획은 옛일이 된 지 오래. 연말쯤이 되서야 머쓱해 하며, 내년부터는 백지상태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리라 다짐한다. 실행과 회고의 텀을 1년이나 두다니. 응, 이건 나의 이야기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공감할 이야기일 수도. 저자는 이런 패턴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여기며, 루틴의 힘을 힘주어 말한다. 그니까 다짐도, 자책도 그렇게 의미 있는 일은 아니니 일단 하라고.


아니 근데, 왜 이렇게 시도하는 게 어려운 것일까. 실제 완벽주의자도 아니면서 완벽할 수도 없으면서도 첫 실행에 있어서 우리는 완벽을 꿈꾼다. 게다가 실패를 무서워하지. 저자가 호되게 혼내는 부분이 맘에 든다. 생각할 시간에 한 번이라도 시도해서 실패하면서 배우자고. 저자의 말에 가슴이 웅장해졌다. 친구가 올 초, 팟캐스트를 같이 하자고 했을 때 무턱대고 하겠다고 말한 내가 기특하기도 했고, 완벽함 그런 거 생각할 시간도 없이 그냥 저질러버렸으니까.

"열정적인 사람들의 특징은 기꺼이 자신을 위험에 노출한다는 것입니다.
별과 같이 빛나지만, 자주 실패합니다. 수시로 좌절합니다.
하지만 빠르게 일어남으로써 성장합니다.
반면에 쿨병에 걸린 사람들은 안전한 옥상에 숨어서 물총이나 갈깁니다.
그들은 논쟁만 일삼을 뿐, 어떠한 실용적 결론도 내놓지 못합니다."


실행, 반복, 강화를 기초로 사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생각 없이 무턱대고 반복하는 것은 의미 없다. 저자가 말한대로 일을 해치울 목적으로 실행하면 안 되고 작업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자기 평가 과정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 미국의 교육 철학자 존 듀이(John Dewy)가 말하는 '행함에 의한 학습(learn by doing)'이 되어야 한다. 이어진 저자의 조언에 회사에서 일하는 방식도 자연스레 떠올랐다. "'일을 해치운다'보다 더 높은 추상화 단계에 문제의식 수준을 두어야 비로소 실행이 유용해집니다."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는 주니어, 시니어, 임원진/C-level이 일하는 방식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1.일을 한다.

2.일을 잘한다.

3.일을 쉽게 한다.

실행에 중점을 두어야하는 레벨은 주니어 레벨, 실력 및 실천을 통한 회고로 발전해야 하는 레벨은 시니어 레벨, 대망의 C-level은 어떻게 일해야 하냐고? 시행착오의 패턴을 인지하고, 인프라를 총동원해서 일을 쉽게 "해결"해야 한다. 저자가 말한 "실행-반복-강화"프로세스와 겹쳐 보인다. 아, 이게 비단 루틴 형성에만 국한된 게 아니구나. 내 커리어, 일하는 방식에도 접목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꼈다. to-do list를 쳐내는 쾌감도 물론 중요하지만, 연차가 쌓이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무어냐. 바로 추상화 단계에 문제의식 수준을 두어야 한다는 것.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던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는 이야기다. 숲을 보며, 지점을 찍고 시도하여 시도하면 그건 강화학습의 먹이가 되니 괜찮다. 하지만 생각 없이 일을 쳐내기만 하면, 연차는 장식품일 뿐 우리에게 어떤 레슨도 남겨주지 않는다.


저자는 또 이렇게 덧붙인다. "설령 문제해결에 성공했더라도 적당한 수준에서 만족하지 말고 항상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현재 내가 도달한 지점이 국소 최적값(Local Maximum)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전체 최적값( Global Maximum)을 찾으려면 봉우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새로운 시행착오를 시작해야 한다는 거죠." 모골이 송연해지는 명문이다. 배우 윤여정 선생님이 영화 <미나리>를 찍기 위해 털사(Tulsa)로 건너가 nobody가 되어 새로운 도전에 임한 것처럼, 특이한 시도를 통한 강화학습이 필요하다. 강화학습의 목적은 결국 내 안에 성공 DNA를 심기 위함이다. 그게 왜 중요하냐면, 어느 날 사막 한가운데 떨어져도 이전에 겪었던 시행착오가 나를 구원해줄 수 있거든. 설령, 당장은 아무런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해도 종국엔 나의 학습 경험이 나를 성공으로 이끌어줄 것이니까. 그래서 올해엔 극단적 실행 주의자가 되어 나를 더더욱 던져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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