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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민경 Feb 12. 2022

여든을 넘긴 노작가의 매콤한 문장들

어슐러 K. 르 귄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세계 3대 판타지 문학이 있다고 한다.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그리고 어슐러 K. 르 귄의 <어스시 연대기>. 어슐러 르 귄은 SF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판타지 소설이 아닌,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것입니다>라는 강연, 서평, 에세이 모음을 통해 어슐러 르 귄을 알게 되었고, 꽤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SF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터라, 처음에는 심드렁했지만 책에 대한 애정, 신진 작가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서평을 통해 이 사람이 정말 문학에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달까. 그래서 그가 쓴 다른 에세이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를 주저 없이 고르게 되었다.


일단, 책 표지부터 강렬하다. 그는 2018년 88세의 나이에 작고했는데 그가 살아생전 기르던 반려묘 "파드"가 책 표지, 간지의 일러스트로 등장했다. 그의 에세이를 읽으며, 80대도 이렇게 깨어있을 수 있겠다는 한 가지 믿음이 돋아났다. 물론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고, 줄곧 문학, 문화, 예술과 늘 가까웠기 때문에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위트, 해학이 빛나는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면서. 나도 그처럼 훈련하면 그러게 될 수 있을까? 계속 질문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책의 부제는 "중요한 것들에 대한 사색"이다. 아무래도 그는 작가이기 때문에 글,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지배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명문을 공유해본다. 글쓰기를 대하는 그녀의 신념이 묻어나 있다. 위험한 입찰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 입찰에 뛰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글과 문학을 사랑했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글쓰기는 위험한 입찰이다. 무엇도 보장되지 않는다. 운에 맡겨야 한다. 나는 기꺼이 내 운을 걸었다. 그리고 그 자체를 너무 좋아한다. 내 글이 오독되고 오해받고 오역되더라도, 그게 어때서? 내가 제대로 썼다면 무시당하고 사라지거나 읽히지 않는 이상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 아닌가."


문학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발견하는 것도 즐거웠다. 과도한 신파를 경계하는 대신에 눈물 너머의 그 무언가를 중요히 여겨야 한다는 그의 말에 공감했다. 그 무언가는 단순히 눈물을 만드는 상황이 아닌, 독자의 마음 깊숙이 숨겨져 있는, 독자조차도 모르는 세계와 조우할 때라는 것을 주장한다. 심도 깊은 통찰이다.

"여러분을 울게 만드는 책이 훌륭한 책이라는 뜻이 아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훌륭한 기준으로 삼을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효과적인 감상주의와 무릎 반사 수준의 자극만 불러일으킬 것이다."

 

문학 말고도 그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그의 반려묘 "파드"다. 에세이 곳곳 그는 파드에 대한 이야기를 심어두었고, 그가 얼마나 파드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다. 요즘 집사들이 "간택당했다"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 고양이를 기르는 계기에 대한 글의 첫 문장이 요즘 집사들과 같았다.

"나는 한 번도 고양이를 골라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고양이에게 간택되거나 고양이를 주겠다는 사람이 나를 택했다."  


분노에 대한 솔직하고, 단호한 글도 참 맘에 들었다. 내가 요가 수련을 하면서, 연습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아니 요가 수련이 아니라 실제 일상에서 마주하는 분노와 당황스러운 감정을 마주할 때 요긴하게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진짜, 이 감정이 너의 것이 맞아?'

"만약 화가 난 상태에서 분노가 치미는 것이 느껴질 때면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래서 뭣 때문에 두렵다고? 그 질문은 내 분노가 어디에서 왔는지 둘러볼 여유를 준다. 맑은 공기를 쐬러 나가는 것도 가끔은 도움이 된다."


시종일관 위트와 해학이 넘치는 매콤한 이 책을 읽다 보니, 그 종착역에는 내가 있었다. 아 - 나의 취향은 매콤함이 듬뿍 담겨있지만, 결국 독자의 입을 열게 하는 또 마음을 열게 하는 힘이 있는 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난이 불특정 다수로 뻗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자조적이거나 염세적이지도 않고. 적당히 현실을 마주하면서, 또 나를 믿으면서 매콤함에 좀 재채기는 나지만 언젠가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다시 첫 인용으로 돌아가서 - 위험한 입찰을 즐기는 그런 사람이 되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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