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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민경 Feb 15. 2021

책 읽는 재미를 되찾다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 어슐러 K. 르 귄 

책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지만, 유독 손이 안 가는 장르는 아마 SF가 아닐까 싶다. 세계관에 익숙해지기까지의 예열 과정이 너무나도 길어서인가? 현실과 연결이 별 없다는 편견 아래 오랫동안 담을 쌓고 지켜본 장르가 바로 SF였다. 그러나 정말 우연히 마주한 이 책 덕분에 SF를 더 알고 싶다는 감정이 싹텄다. 이 책의 저자 어슐러 K. 르 귄은 <나니아 연대기>, <반지의 제왕>과 더불어 세계 3대 판타지로 불리는 <어스시 연대기>의 저자이자, 세계 판타지 문학의 거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2018년에 작고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가 살아생전 다녔던 강연에서의 조각 글과 작가들에 대한 평, 그리고 그가 읽었던 SF 작품의 서평, 마지막으로 여성 작가들만의 칩거 처인 헤지브룩에서 보낸 일주일의 기록이 담겨 있다. 


책의 대부분이 SF에 대한 서평이고, 해당 서평이 중 대다수가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지 않아서 다소 생소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유머러스하고 또 때로는 신랄한 그의 서평 덕에 영문 버전으로 책을 읽고 싶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창래의 <만조의 바다 위에서>라는 책을 읽고 쓴 서평이 참으로 인상 깊었다. 좋았던 부분과 좋지 않았던 부분을 확실히 구분하여 좋지 않았던 부분은 또 통렬하게 비판한다. 

이창래는 진지한 장르의 핵심 요소들을 무책임하게, 피상적으로 이용한다. 그 결과로 이창래의 상상 세계에는 현실감이 거의 없다. 체제 전체가 너무 자기모순이 심해서 경고나 풍자로도 알맞지 않다. 설령 책 끝에 가서는 서술자가 그 비현실성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해도 그렇다. p.417
...(중략) 
이창래의 글은 매끈하고 빈틈없다. 이야기는 물 흐르듯 하고, 사건은 생생하게 묘사되며 특히 기괴한 전설 같은 폭력과 과장으로 변해 갈 때 더 그렇다. 기분 좋게 사색적인 순간들도 있다. 시대착오와 비현실성을 쉽게 받아들이는 독자들이라면 이 이야기를 즐길 것이고, 그 속에서 신선한 시각을, 음울한 낡은 디스토피아에 대한 새로운 이견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지 못했지만. p.418


그가 쓴 서평을 읽어보면 정말 책을 읽는 행위를 그 누구보다도 주체적으로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구조뿐만 아니라 표현 방식 작가의 철학까지 총체적으로 바라본 후에 과감한 해석을 곁들인다. 관조적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책 속으로 흠뻑 들어가서 책 속에서의 세계를 흠뻑 경험한 느낌이랄까. 그 때문인지 서평 자체가 지루하지 않고, 해석 하나하나가 재밌고 독특했다. 저자처럼 주체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도! 


그의 책을 읽으면서 책 읽는 즐거움을 한 번 더 생각해본다. 책 읽기는 왜 재밌는 것일까? 난 이 책을 읽고 독서의 즐거움을 한 번 더 정리할 수 있었다. 정말 누구의 개입도 없이 온전히 나만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작가가 만든 세계에서 재밌게 뛰놀 수 있어서 책이 재밌는 것 아닐까? 그리고 책장을 다 덮고 얻은 지식과 이로 인한 간접 경험은 일상이라는 치열한 전쟁터에 나서기 전에 꼭 필요한 든든한 총알의 역할을 해준다. 정말 맛깔나게 책을 읽었던 어린 시절의 나를 회상해본다. 누구의 추천이 아니라, 순전히 호기심으로 책을 고르고 그 세계에 흠뻑 젖었던 그 시절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역시 책은 누가 읽으라고 할 때보다 내가 직접 골라서 읽을 때가 훨씬 재밌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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