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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민경 Feb 03. 2022

왜 읽냐 건 웃지요

문유석 <쾌락독서>

2022년 나의 목표는 100권의 책을 읽고, 이에 대해 기록하는 것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매달 최소 9권의 책을 읽고, 기록하겠다 다짐했고. 무사히 1월을 넘겼다. 2월의 첫 책으로 <쾌락도서>를 읽게 되었고, 어느 정도 의무의 감정으로 책을 읽는 요즘의 나를 독서를 미친 듯이 사랑했던 어린 시절로 데려다줬다. 저자의 탐독 경험을 글로 생생하게 전해 들으니,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도 근질근질해졌고- 다만, 나는 저자만큼 유명한 사람이 아니니 내가 이런 경험을 공유한들 크게 달라질 게 있나 싶기도 하다. (하 유명한 게 장땡이야, 그리고 저자가 그 유명함을 나름 책에서 인정한 부분이 감사하고 다행이었달까.)


내가 본격적으로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내 또래 상당수가 경험한 <해리포터> 시리즈의 등장이었다. 뭐 그 전에도 책을 뭐 그럭저럭 좋아했고, 특히나 아빠가 다독가라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끽독의 세계로 데려다준 책은 해리포터였다. 얼마나 과몰입이였나면, 초등학교 4학년 그 어린 나이에 다음 카페를 만들어 해리포터 기숙사를 컨셉으로한 동호회 카페도 만들어 운영했다. 한 권의 책을 끼니도 거를 만큼 몰입해서 보고, 한국 번역본이 나오는 것을 못 참고 영문판을 구입해서 볼 정도로 열정적이었으니 말이다. 해리포터는 하나의 촉매제였고, 이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독서 논술 수업을 듣게 되면서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면 응당 읽어야 하는 책 리스트 (예를 들어 데미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갈매기의 꿈, 등등)에 나오는 책들을 읽게 되며 또래보다 젠체할 수 있는 나의 모습에 도취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늘 책을 끼고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가는 무렵, 외고 입시 실패로 몰입할 게 필요했던 나는 어쩌다 파울로 코엘료, 베르나르 베르베르, 기욤 뮈소, 알랭 드 보통의 작품에 빠지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성인들이 읽을법할 소설들까지 닥치는 대로 사서 읽었다. 하루에 2-3권을 해치울 만큼 미친 듯이 읽었다. 그중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나도 노르웨이 숲임을 알지만, 이건 돌이킬 수 없다)도 있었고, 어린 나이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공부하다가 도피하고 싶을 땐 학교 도서실로 숨어서 읽고 싶은 책을 잔뜩 집어와 세상과 단절됨을 즐겼던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저자 덕에 나도 내 인생 가장 독서를 즐겼던 때로 돌아가, ‘그때가 좋았지.’ 혼자서 읊조렸다.


책을 100권 읽겠다는 목표 설정도 물론 좋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친 건 아닐까. 맞아, 뭔가 읽고 남기는 것은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 재미다. 학창 시절, 만사 제쳐놓고 순수한 지적 호기심으로 책 읽기에 몰두했던 경험이, 또다시 필요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와닿았던 구절을 공유해본다.

“결국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고 세상 모든 것에는 배울 점이 있다. '성공', ‘입시', ‘지적으로 보이기' 등등 온갖 실용적 목적을 내세우며 '엄선한 양서 읽기를 강요하는 건 ‘읽기' 자체에 정나미가 떨어지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자꾸만 책을 신비화하며 공포 마케팅에 몰두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은데, 독서란 원래 즐거운 놀이다. 세상에 의무적으로 읽어야 할 책 따위는 없다. 그거 안 읽는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 그거 읽는다고 안될게 되지도 않는다.”

아, 그래 나 재밌자고 하는 일인데, 재미를 빼놓을 수는 없지. 이 부분에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이제 저자가 알려준 짜사이 이론을 활용해서 책을 고르고 읽겠어! 생각하다 보니, 내 취향에 맞는 글은 무엇인지 한 번 더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탐미적인 글을 그다지 즐기지 않다고 말했는데, 이 부분에 많이 공감했다. 이어서 그의 글 취향을 알게 되었고, 나와 비슷해서 이 분이 추천하는 책은 어느 정도 나와 잘 맞겠구나 생각했다. 난 여기에 더해 지나치게 겸양 떠는 글은 잘 못 견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 쓰는 사람이란 모름지기 뻔뻔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나친 겸양은 매력을 떨어뜨린다, 근데 너무 또 젠체하면 재수가 없지…그래서 글은 쉽지 않지…)


“책을 덮고 내 취향의 글이란 뭘까 생각해봤다.

-어깨에 힘 빼고 느긋하게 쓴 글.

-하지만 한 문단에 적어도 한 가지 악센트는 있는 글.

-너무 열심히 쓰려고 애쓰지 않았는데 잘 쓴 글.

-갯과보다는 고양잇과의 글.

-시큰둥한 글.

-천연덕스러운 깨알 개그로 킥킥대게 만드는 글.

-이쁘게 쓰려고 애쓰지 않았는데 촌스럽지도 않은 글.

-간결하고 솔직하고 위트 있고 지적이되 과시적이지 않으며 적당히 시니컬한 글.”


고양잇과의 글이라. 어떤 느낌인지 대충 알 것 같다. 난 바로 하루키를 떠올렸는데 저자도 대표적인 작가로 하루키를 언급했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는 나의 독서 취향을 잘 파악하는 게 쾌락독서의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다 재밌자고 읽는 건데 말야, 재미가 없으면 책을 읽는 이유가 없다. 지식은 책이 아니더라도 유튜브나, 지식소매상 (대표적으로 유시민 작가)을 통해서 습득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저자가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책 내용을 공유한 부분도 좋았다. “삶을 이루는 것 중 상당수는 습관이고, 습관이 행복한 사람이 행복하다.”라는 구절. 깊이 공감했다. 100권이라는 숫자를 만들겠다는 나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다 재밌자고 행복하자고 하는 건데 굳이 억지로 어려운 책을 끼워 넣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 책 덕분에 독서 취향을 발견하게 되었고, 올해 독서 목표를 바라보는 마음가짐도 점검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잠시나마 학창 시절의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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