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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민경 Feb 14. 2022

아끼는 초콜릿을 꺼내먹듯 읽은 책

김지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몰입감 있는 소설을 읽을 때는 속도감 있게 책장을 넘기는 편이다. 다음 이야기가 너무나도 궁금하니까.  읽히지 않는 책은 책을 읽고, 덮고를 반복하다가 삼분의  정도 읽었을 , 도저히 참지 못하고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책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세상에는 책이 정말 다양하고   마음에  수는 없으니 .  한국 최고의 석학이라고 불리는 이어령 선생님의 인터뷰를 모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속도감 있게 이어나간 책은 아니었다.      소중해서, 결말이 없었으면 하는 책이었달까. 어떤 장면에서는 며칠을  부분만 오랫동안 머무르기도 했다.


이어령 선생님이야 이 시대의 지성이자 석학으로 말씀 하나하나가 뼈에 새기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와닿았는데,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아마 이 책의 인터뷰어이자 저자인 김지수 기자의 공이 아닐까 싶다. 저자 덕에 이어령 선생님의 댁에 직접 방문해 생생하게 이어령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을 들었으니까. 보통의 인터뷰 모음집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사이의 핑퐁을 멀찌감치 지켜보는 독자1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번 책은 뭐랄까 독자가 갖고 있는 궁금증, 나아가 독자의 아픈 구석을 대신해서 대변해준다는 느낌이 들어 마치 내가 이어령 선생님과 그 자리에서 대화하는 느낌이 들어 참 좋았다. 독자를 대변하기에 앞서 본인의 아픈 경험, 부끄러웠던 부분도 독자를 위해 흔쾌히 내보여 주시니, 질문의 맥락을 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달까. 특히나, 맘에 들어 몇 번이고 입 밖으로 꺼내 읽은 문장이 하나 있어 공유해본다.

"내 삶으로 누리지 못하면서, 그 물에 한 발을 담그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했던 시절. 한편으론 마치 그 탐스러운 것들에 초연한 척, 진지하고 교양 있는 글로 나를 포장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 다리를 딛고 그림처럼 서 있는 홍학처럼, 비단과 누더기를 함께 기운 천 조각처럼 나의 내면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불균질 했고 아슬아슬했다. '내 고향은 달동네. 너무 비루해서 반짝이는 거라곤 별빛밖에는 없지.' 가난과 결핍을 들키지 않으려고 어린 시절부터 시늉이 체질화된 삶을 살던 나는, 그 시늉이 삶을 완전히 집어삼키기 직전에, 버블 낀 청담동을 떠나 잉크 냄새 진동하는 광화문에 정착했다. 내 인생의 거품 경제 시절은 지나갔지만, 한동안 나의 환경을 지배했던 '럭셔리'가 무엇인지, 스승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선생님, 럭셔리한 삶이 뭘까요?"


인터뷰어의 표정, 어조, 제스처, 상황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영상 인터뷰와는 달리, 서면 인터뷰는 오로지 인터뷰어가 서술하는 문장에 기댈 수밖에 없다. 서면 인터뷰의 한계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단순 묘사에 앞서 본인의 이야기를 기꺼이 넣어 인터뷰어, 인터뷰이, 독자를 연결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다. 김지수 기자님만 할 수 있었던 일이었던 것 같다. 그 덕에 인터뷰어의 상황에 나를 놓고, 이어령 선생님과 더 친밀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자님 덕에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감사했다. 그래서 참, 이 책을 아끼는 초콜릿을 하나하나 조금씩 꺼내먹듯 읽었다. 빨리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읽고, 멈추고, 읽고 멈추고를 반복했다. 삶이 부칠 때 정성스레 접은 책 귀퉁이를 매만지며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사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두고, 두고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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