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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민경 Mar 02. 2022

사랑하며, 성장하고 또 성장하며, 사랑하고

Wendelin Van Draanen <Flipped>

그저 흔한 성장기 로맨스인 줄 알았다. 영화에서도 그 점을 좀 더 부각했고, <Flipped>의 한국어판 제목은 무려 <두근두근 첫사랑>이니까. 그렇게 생각했지 뭐야. 원서를 다 읽고 나서야, 한국어판 제목이 영 탐탁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동시에 이해도 된다. 더 섬세하게 번역하기엔 이 책의 타깃은 청소년이거든. 단순한 로맨스로 납작하게 묘사하기에는 섬세한 서사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Juli와 Bryce뿐만 아니라 각 인물의 "flipped" moment이 어딘지 살피며 읽었다.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의 경우, 원작의 팬들을 실망시키게 하는 경우가 더러 있으니 책을 읽기 전 영화를 보는 게 살짝 망설여지긴 했다. 꽤 놀라운 점은 영화감독이 책에 나온 주요 대사를 그대로 반영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고. 원작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충실하게 전하려고 했다. 역시나 영화에서 아쉬웠던 것은 Juli와 Bryce를 중심으로 한 주변 인물들의 감정 묘사가 많이 배제되었다는 것.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반려견 Champ에 대한 내용, Chet의 아내에 대한 내용, Juli의 엄마와 Bryce의 엄마가 대화를 나눴던 내용은 영화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다.


"Flipped"란 감정 혹은 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Bryce의 관점, Juli의 관점으로 그 둘이 처음 만나고, 서로를 진정으로 알게 되는 순간을 섬세하게 잘 묘사했다. 예를 들어 첫 장 "Diving under"에서는 Bryce가 얼마나 Juli를 멀리하고 싶었는지 알 수가 있었다. 특히나 "sniffling"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Bryce가 Juli를 얼마나 성가셔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반면 Juli는 첫장부터 엄청난 댕댕이로 묘사된다. 남의 시선이 어떻든 현재 본인이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고 또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행동파다. Juli는 Bryce의 파란 눈에 Bryce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게 Juli의 첫 flipped moment이었다. 반면, Bryce는 Juli와는 다르게 남의 시선과 의견이 더 중요한 아이라 Juli의 행동 하나하나가 당황스럽다. 아빠와 아들 사이는 척하면 척, 눈치로 통하는 게 없지 않아 있지만 순수한 Juli에게는 그게 통할 리가 없다. 본인이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고, 아님 아닌 거다. 이렇게 둘이 달랐다.


이 책은 일련의 사건을 "부분과 전체", "외면과 내면"이라는 메타포를 활용해 주인공인 Juli와 Bryce의 사랑과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사랑이 주된 감정이긴 하지만, 좀 더 폭넓게 보면 인간의 바람직한 성장에 대한 책이다. 파란 눈이 좋아, Bryce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Juli에게 소중한 내면의 가치를 Bryce가 보지 못하고, 심지어는 함부로 대하는 것처럼 보일 때 Juli의 감정은 관심→집착→실망→분노→무관심(척)으로 전환된다. 반면 Juli와 그렇게 멀어지고 싶어서 노력했던 Bryce는 그가 보지 못했던 가치를 Juli를 통해 알게 된다. Bryce의 감정은 무관심→성가심→초조함→후회→사랑으로 전환된다. Juli에게 정말 소중한 의미이자, 이 책이 이야기하고 싶은 내면의 가치를 함축한 "The Sycamore Tree"의 존재로 마침내 Juli도 혼란스러운 감정에서 희망 혹은 사랑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둘 다 성장을 하고, 서로를 바로 볼 수 있었던 게지.


책을 읽는 나의 마음도 주인공의 감정과 함께 움직였다. 한편 Bryce가 Bryce답게 감정을 표출할 수 없었던 가정적인 배경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고. 행동파인 Juli의 저돌적인 추진력과 나이브함에 자연스레 지난 연애와 나의 성장 배경을 돌아보게 되었달까. Bryce의 감정도 이해가 되고, Juli의 감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결국 우리는 사랑하며, 성장하고 또 성장하며,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존재구나. 사랑이란 게 정말 훌륭한 성장의 매개체라는 것을. 성장이 얼마나 서로를 더 진실한 모습으로 보게 하는지. 이 책을 통해 많이 배웠다. 사실,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몰라. 그렇지만 책 덕분에 무엇이 소중한지 한 번 더 새길 수 있었던 것이겠지. 내게 이 책은 가벼운 책에 불과했는데, 애정을 가지고 뜯어보니 전혀 가볍지 않다. 나야말로, flipped. "Maybe it's time to read this book in the proper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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