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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영 Nov 01. 2021

한강을 마주하다

지금 나는 한강에 서 있다

 오늘 아는 언니와 한강을 갔다. 코로나 19가 무색하게 많은 사람들이 바삐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아무리 전염병으로 거리두기를 권장해도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다 똑같나 보다. 나도 그렇기 때문에. 이번 한강 방문은 꽤 오랜만이었다. 사실 며칠 전에 시험기간의 리프레시용으로 갔다 오긴 했는데, 그때 간 것 외에 마지막으로 갔던 게 언제였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꽤 오랜만에 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강에서 언니와 한강 라면을 먹으며 야경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고. 수많은 연인들과 놀러 나온 내 또래의 사람들, 자전거 타는 사람들 등등 많은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서 퍽 신기한 느낌을 받았다. 일상에서 하면 별로 특별한 것이 없는 것들도 한강에서 하면  되려 특별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라면 끓여먹기라던지, 친구와 수다라던지, 자전거 타기라던지. 왜인지 모르게 한강에서 하면 색다른 느낌이 든다.


“한강 라면은 집에서 끓이는 것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아”


 언니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맞아, 집에서 끓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맛있지. 3000원이라는 일반 라면 가격의 2-3배나 되는 가격이지만, 이상하게 한강에만 오면 꼭 먹는 것 같다. 돗자리를 하나 대여해서 아무 데나 앉아 라면을 먹으며 바라보는 한강의 야경. 서울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한강에 비친 수많은 아파트들의 조명을 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언젠간 나도 저런 번쩍번쩍 빛나는 집에서 사는 날이 올까. 구태여 마음속으로  대답은 하지 않았다.  질문에서 멈추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저 수많은 서울의 집들 중에 나의 집이 없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인데, 항상 그런 생각을 한다. 왜 저 많은 집들 중 나의 집은 없을까. 그렇다면 나는 저런 집에서 살 수 있을까. 대답은 모르는 일이다. 사실, 스스로 잘 알고 있지만, 나는 아직 젊기에 나의 미래를 그렇게 단정 짓고 싶지 않았달까.

 

 한강은 나에게 서울 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공간 중 하나였다. 리단위의 시골 동네에서 나고 자라 대학에 오기 전까지 그곳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였기에, 만약 서울로 대학을 진학한다면 한강을 꼭 자주 가봐야지 라는 생각을 해왔다. 우리 동네는 주변에서 재개발이 이뤄지는 가운데에서도 꿋꿋하게 시골적인 면모를 유지했는데, 근처에 편의점이나 대형마트 하나 없는 내 기준에서는 진짜 깡시골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같이 살았던 이웃주민들은 더 좋은 집을 사서 한 명, 두 명 이곳을 떠나는데 우리 가족은 몇 년이 지나도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더욱 '새로운 공간'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  그렇게  유년시절의 전부를 그곳에서 보내고, 나는 서울로 대학을 진학했다. 그리고 한강에 갔다. 작년 5월 말에 한강을 처음 가본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살이에 가장 지치고 힘들었을 때 한강에 처음 갔던 것 같다. 작년 5월 초에 서울에 와 2-3주 간은 나에게 새로움과 동시에 낯선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를 가져다주었다. 나와 친한 친구들, 부모님의 품에서 벗어나 객지에서 혼자 생활하며 나름대로 힘든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 그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그래서, 도망치듯 본가로 다시 갔다. 한 일주일 정도 머물고 다시 서울에 있는 기숙사로 올라왔다.  그러고선 이내 챙겼던 캐리어를 벗어던지고 한강에 갔다. 잠실 한강이었던 것 같은데, 뚝섬이나 여의나루처럼 사람이 많이 붐비지도 않고 혼자 야경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기에 좋은 공간이었다. 그 당시 한강은 나에게 일종의 도피처였다. 사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서울에 온 것을 후회했던 순간이 있었기에, 기숙사 방에 다시 들어가면 힘든 객지 살이가 시작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모든 걸 벗어던지고 무작정 한강에 갔는데, 처음 보는 한강의 야경을 보고 그냥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던 것 같다. 내가 지금 서울에 와있구나, 몇 달 전 아니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순간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결국 여기에 와 있구나. 서울에 온 것에 대한 후회와 힘듦이 섞인 감정으로 서울에 갔는데, 웃기게도 서울에 오길 참 잘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기숙사로 돌아가게 해 준 날이었다.


지금,  나는 다시 한강에 서있다.


 그때 잠실 한강의 야경을 바라보는 나와, 지금 한강에 서있는 나. 초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성장하는 것만큼 오래된 시간도 아닌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그에 비견할 정도로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 진학한 후,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에서 보낸 나는 이제는 서울이 나의 공간인 만큼 이곳 생활에 적응했다. 작년에는 지방에서 서울로 갓 올라온, 외부인의 시점에서 한강은 위로와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이제 한강은 나에게 서울에서 잘 살아가자, 잘 버텨내자와 같은 의지를 불어넣어 주는 공간이다.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휴대리에서 오늘 여의나루 한강에 오기까지 참 고단한 여정이 있었으니, 이제 여기서 잘 살아보자라는 다짐을 하게 해주는 그런 공간이다. 그러나, 작년만큼 순수하게 한강을 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동경의 대상이었던 그곳에서 야경들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기쁨의 감정을 느꼈던 나와 달리 오늘 한강에서의 나는 자연스럽게 현실적인 생각을 하고 있기에.


 다음에 한강을 방문한다면 또 감정일까. 다음에는 나에게 선물과도 같은 그 사람과 오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맛있는 한강 라면을 먹으며 진부한 사랑이야기를 하며 다시 한강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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