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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ㅈㅊ Aug 09. 2020

아직 아저씨 아니야

일상

 올해 초 전시 갤러리 앞을 서성이다가 화들짝 놀란 적 있었다. “비켜요. 아저씨.” 한 꼬마 아이가 내 뒤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갑작스런 외침에 몸을 파르르 떨 정도로 움찔했다. 무례함이 다분한 앞 단어, 해요체 때문이 아니었다. 세 글자의 호칭. 아저씨. '설마 나를 가리킨 거니?' 곱씹을수록 약간 화났고 조금 슬펐으며 다소 억울했다. 25살밖에 안됐다고, 아저씨는 아니고 ‘애어른’쯤 됐다고 아이를 붙잡아 항변하고 싶었지만 아이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곧장 화장실을 찾아 거울로 내 얼굴을 봤다. 눈가 주변에 주름이 나타났고 눈밑엔 다크서클이 두텁고 길쭉하게 드리웠다. 세월의 직격탄을 그대로 맞은 얼굴. 아저씨란 소리를 들을 법도 했다. 어릴 적 기대했던 모습과 달랐다. 6년 전, 그러니까 고3 열아홉 살이었을 때 ‘예쁜 나이 스물다섯 살’ 노래를 주기도문처럼 흥얼거린 적 있다. ‘스물다섯 살 되면 예뻐진다. 얼른 늙고 싶다’ 생각하며. 이게 웬걸. 노래 초반 “거울을 보면 달라졌다.” 한 문장 빼곤 모조리 틀린 내용이었다. 혹시 내게만 틀린 가사였나. 또 나만 진심이었나.


 반 살 더한 25.5세 나이를 스친 지금. 아저씨라 불러주었던 꼬마 아이를 다시 떠올렸다. 아저씨라 처음 불렸던 그때 감정과 다른 심정으로 아이를 재회했다. 약간 당혹스러웠고 조금 과분했으며 다소 민망했다. 아저씨로 대표되는 어른의 호칭을 이름 석 자 뒤에 나란히 두기엔 내 수준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외양은 아저씨처럼 나이 들었지만 마음가짐은 여유롭지 못했고 감정 관리는 여전히 아이 수준이었다. 25살. 50의 절반인 나이. 어른이라 대우받기엔 미숙했고 그렇다고 어린이날 선물 받기엔 민망한 나이였다.


 아저씨 둘이 있다. 영화 <아저씨> 차태식(원빈)과 드라마 <나의 아저씨> 박동훈(이선균). 옆집 아저씨와 직장 옆 책상 아저씨. 이들은 아이 소미(김새론)와 이지안(이지은)을 꾸준히 따뜻하게 바라봤다. 극 중 아이들은 아저씨에게 삶의 무게와 질감을 고백했다.


아홉 살 소미가 말했다.

“아저씨... 아저씨도 내가 창피하죠? 그래서 모른척했죠?

괜찮아요, 반애들도 그렇구 선생님도 그런데요 뭐.

엄마도 집 잃어버리면 주소랑 전화번호 모른척하래요.

술 마시면 맨날 같이 죽자는 소리만 하고...

거지라고 놀린 뚱땡이보다 아저씨가 더 나빠요...

그래도 안 미워요. 아저씨까지 미워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한 개도 없어..

그 생각하면 마음이 막 아파요.. 그니깐, 안 미워할래.”     


스물한 살 지안이 말했다.

“누가 뭐라 그러면 내가 얼마나 불쌍한 앤지 말하면 되니까.

내 인생에 날 도와준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 거라곤 생각하진 마요.

많았어요. 도와준 사람들.

반찬도 갖다 주고, 쌀도 갖다 주고.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네 번까지 하고 나면. 다 도망가요. 나아질 기미가 없는 인생. 경멸하면서.

흠 지들이 진짜 착한 인간들인 줄 알았나보지.”


 아저씨는 어떻게든 함께 있어주는 것으로 답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관계를 맺었다. 또한 아이-어른으로 관계를 읽지 않았고 상하관계로 이해하지 않았다. 관심을 주고받는 호혜적 관계였고 감정을 느끼게 하고 본인도 감정을 느끼는 쌍방향 수평관계였다. 서로를 찾고 보살피며 서로 위로했다.     


삼십 대 태식이 말했다.     

“미안하다 그때 모른 척해서 미안해

너무 아는척하고 싶으면 모른 척하고 싶어져”     


“혼자 서는 거야 할 수 있지?

한 번만… 한 번만… 안아보자

한 번만 안아보자”          


마흔다섯 살 동훈이 말했다.

“착한 거야. 네 번이 어디야. 한 번도 안 한 인간들 쌔고 쌨는데.

(꼬록) 하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내 인생이 네 인생보다 낫지 않고

너 불쌍해서 사주는 거 아니고.

고맙다고 사주는 거야”     


“너희들은 걔 안 불쌍하냐?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을 말해주잖아.

상처 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

그게 보여. 그래서 불쌍해.

걔의 지난날들을… 알기가… 겁난다.”      


 아이들은 아저씨가 왜 본인들을 돌보는지 궁금했다. 돌리거나 꾸미지 않고 직접 어른에게 물었다. 이들이 애쓴 이유는 간단하고 명료했다. 아저씨니까. 하지만 아저씨는 이를 아이에게 말로 설명하지 않았다. 행동할 뿐. 순수함으로 진실함을 빛냈다.     


<아저씨>

소미 “그게 무슨 말이에요?”

태식 “나도 몰라”     


<나의 아저씨>

동훈 “아버지는 뭐하시고?”

지안 “그런 걸 왜 그냥 물어봐요?”

동훈 “어른들은 애들 보면 그냥 물어봐. 그런 거.”     


 아저씨는 가볍지 않은 호칭이었다. 아저씨에 걸맞은 어른이 되기 위해 말과 행동을 다듬었다. 태식과 동훈처럼 나이 들겠다는 선언을 눈 뜨는 아침과 눈 감는 밤마다 읊고 있다. 또한 '예쁜 나이 스물다섯 살’ 노래 가사를 ‘어른 나이 삼, 사십 대’라 바꿔 부르고 있다. 언어습관이 태도와 행동에 스미리란 계산이었다. 더 좋은 다른 방법이 있다면 언제든 두 팔 벌려 환영이다.


 흔하고도 특별한 호칭에 내 모습이 어울릴 즈음, 날 아저씨라 불렀던 그 아이를 다시 만난다면 어떨까. 네? 아마 아이가 할아버지라 부를 거라고요? 저한테 왜 그러세요. 흑.


참고 노래

<어른처럼 생겼네, 옥상달빛>


멍청이 같은 하루를 보내고
내가 원하는 실없는 농담을 말하네
겁쟁이 같은 한 달을 보내고
내가 속 편한 방구석 의자에 앉았네


어른처럼 생겼네 이제는 나도
생각도 그래야 할 텐데
그랬다면 이렇게
엉망으로 살 순 없겠지
평범한 어른이라면


홀로 잠에서 깨어나 보니 내가
어른이 된 것만 같아 낯선 내 모습에
거울 속에서 여전히 아이 같은
너는 정말 누구일까


어른처럼 생겼네 이제는 나도
생각도 그래야 할 텐데
그랬다면 이렇게
엉망으로 살 순 없겠지
평범한 어른이라면


홀로 잠에서 깨어나 보니 내가
어른이 된 것만 같아 낯선 내 모습에
거울 속에서 여전히 아이 같은
너는 정말 누구일까


사람은 꼭 어른이 돼야 하는 걸까
또 삐쭉거리며 투정을 부려도
세상 속에서 단 하나 바라는 건
절대 포기하지 말아줘
오늘의 나 또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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