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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ㅈㅊ Aug 06. 2020

삼단 우산

느낌

<Golconda, René Magritte, 1953>


‘허리가 쑤신 걸 보니 내일 비가 오겠군.’ 노인은 기상청이 놓친 예보마저 몸으로 알아차렸다. 자식들이 혹여 우산을 깜빡할까싶어 미리 서너 개를 문앞에 꺼내뒀다.


 토독토독. 비가 내렸다. 노란색 접이식 우산과 검은색 장우산. 튼튼하고 단단한 우산은 자식들이 집어가고 집에 없었다. 남은 건 녹이 슨 삼단 우산. 노인이 집어 든 건 그가 자주 써온 삼단 우산이었고 빗방울은 어느새 굵은 빗줄기로 바뀌었다.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단 이유로 그는 낮은 곳으로만 다녔다. 물이 고여들 곳을 이들은 자진했다. 노인학대 피해가 상당해도 자녀를 위해 문제를 숨겼다. 가족에 의한 학대에도 그들은 숨죽이며 있었다. 19년 통계에 따르면, 부양자 등 신고의무자에 의한 신고는 16.7%에 불과했다.


 코로나19로 경로당이 폐쇄됐다. 노인을 위한 거리 두기가 시작됐다. 고립되는 상황에서 이들은 또다시 낮은 곳으로 밀려 들어갔다. 대안으로 디지털 소통이 제시됐지만 그곳에서도 거리두기는 여전했다. 라떼와 꼰대, 틀딱. 주류를 점한 포노사피엔스 세대는 불합리를 겪었단 이유로 이들에게 환영보단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점차 이들은 누구의 눈에도, 마음에도 띄지 않았다.


 후두둑 후두둑. 비가 계속 내렸다. 노인이 쓴 삼단 우산은 가볍디 가벼워 바람에 휘날렸다. 손잡이로 전해지는 우산의 무게와 비의 진동을 그는 홀로 느꼈다. 다음 날도, 그다음날도. 쓸쓸한 장마였다.



참고 기사

1. 매맞아 숨지고, 강제노역도...장애인 학대신고 한해 4376건

2. 자식이 때려도 욕해도 참는다… 학대 숨기는 부모들

3. 우리가 지켜야 할 '그'들은 누구인가

4. 21세기 문명의 진화 :  : 포노 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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