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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업하는 선생님 Jul 11. 2022

공무원이 부업과 퇴직을 생각하는 이유

교사라는 명함이 없으면 전 빈껍데기입니다.


사회에서 난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한창 초등교사가 각광받는 시절 우수한 성적을 바탕으로 교대에 입학했다. 15년도 당시 교대라 하면 입학만 성공하면 낮은 임용고시 경쟁률을 바탕으로 무조건적으로 초등교사가 되는 것이 확정되어 있는 곳이었다. 마치 의대를 입학하면 의사가 되고, 간호대에 들어가면 간호사가 되는 게 기정사실화 되는 것처럼.

  

그런 교대에 대한 아성은 내가 대학교 3학년이 될 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예상을 밑도는 출산율과 교대-정부의 이해관계로 만들어진 초등교원 미발령자 급증은 초등임용고시 선발인원의 급감으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내가 시험을 봐야 했던 대학교 4학년 때엔 선발인원은 더더욱 줄어들어 있었다.


그리고 난 초등임용고시 시험에 떨어졌다. 그리고 연달아 지원한 기간제 교사 도전에 번번이 떨어졌다. 다른 기간제와 달리 안 좋은 조건의 기간제였고 보험처럼 넣었던 기간제조차 떨어지자 난 버텨낼 수가 없었다. 임용고시 낙방과 연다라 이어지는 기간제 실패는 날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때의 모멸감과 수치심은 사람을 갉아먹어되었고, 잘난 머리와 성적 그리고 학교 타이틀 덕에 빵빵했던 뽕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터져버렸다. 난 고용주 입장에서 사회의 입장에선 무엇하나 증명해내지 못한 nobody 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닥을 찍어본 후 다행히도 기간제도 구하고, 임용고시에도 합격해 초등교사가 될 수 있었지만 그때의 '무기력'함은 나에겐 그림자처럼 날 항상 따라다녔다.




부산에서 초등교사를 하며 난 다시 정에 취하고, 전문직이라는 뽕에 취하게 되었다. 그리고 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입영을 하게 되었다.


군대 속에서 난 다시 hit the wall, 현실에 벽에 다시 부딪혔다. 그곳에서 난 수백 명의 빡빡머리 훈련병에 불과했고, 그곳에선 사회에서 만들어 낸 명함 따윈 통하지 않는 곳이었다. 약간의 후광을 나에게 주었을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는 말처럼 그 낙폭 감이 시리도록 날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브라만이 되었다 수드라가 된다는 게 이런 것 일가 싶었다.

 

그곳에서 내가 수차례 낙방의 고비를 마셨을 때 얻었던 '무기력'이라는 트라우마를 재생시키고 강화하게 되었고 그러한 일련의 경험 나에게 하나의 말을 던졌다.


교사라는 슈트를 벗으면 넌 아무것도 아니다.

명함 위 타이틀을 빼면 넌 뭐냐?




내 인생의 단이 막힐 때


초등교사라는 직업은 정말 좋은 직업이다.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여타의 알바 경험과 다른 친구가 하고 있는 일을 보면 이만한 조건과 워라밸로 사회적 존경을 받을 수 있고 안정성을 얻을 수 있는 직장은 대한민국엔 거의 없다. 심지어 퇴사 1위 인간관계 면에서 시스템적으로 장점이 가득 찬 집단이기도 하다.


교장, 교감을 제외하고 모두가 명목상 평교사이기도 하고, 초임 교사도 우리 엄마뻘의 베테랑의 교사도 모두가 똑같은 한 반을 책임지는 사람이기에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가득하다. 직장 내 갑질이라고 하는 것도 내가 체험한 바로는 없다시피 하다. 아이들과 맞이하고 서로 부딪힐 일이 없어서 그런지 서로 웃고 떠들일 만이 대다수였지 갈등이 벌어질도 없었다. 


안타까운 월급 빼고 직장인으로서 이렇게 완벽해 보이기만 하는 초등교사라는 직장이지만 그 '직장'이라는 한계가 날 괴롭게 만드는 점이다. 하루하루 알차고 즐겁지만 그 뒤에 해소하지 못하는 갈망이 하나 내 마음속에 존재했다. 

 

이렇게 무난하게 물 흐르듯이 살아가는 것이 내 삶의 끝인가?

내 인생에 더 나아갈 곳은 없는 것인가?


이대로 현실에 안주하면 안정과 인정을 얻을 수 있지만, 내 인생의 하단도 막혔지만 상단이 막혔다는 사실이 날 괴롭게 만들었다. 내가 하늘에 부여받은 재능, 잠재력을 갉아먹는 느낌이었다. 달리기를 하는데 더 빨리 달리고, 더 좋은 기록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쉬엄쉬엄 편하게 걷는 느낌... 선물 상자와 복권을 받았는데 그것의 결과를 확인하지 못한 느낌... 내 영혼이 갉아 먹히는 느낌이었다.  찜찜한 느낌은 굉장히 더러웠다.




내 가능성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불안함 외에도 날 흔들리게 하는 깊은 곳에서 끌어 오르는 갈망 - 가려움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돈을 꽤 잘 벌지 못했던 거 같다. 아니 상대적으로 나에게 그렇게 느껴졌다. 어렸을 적 내 친구들은 아파트에 살고 좋은 곳에 여행을 가고, 닌텐도 DS로 게임을 하는 등 내 기준으로 품위 있는 삶을 영위했지만, 난 허름한 연립주택 - 학교와 학원이 끝나고 나서는 부모님의 사무실에 가야만 했다. 다른 친구들은 학원에 끝나면 집에 들어가 부모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숙제를 하고 하루를 끝마쳤을 텐데라는 상상을 하며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부러움을 가졌다.

 

그런 좋은 아파트에 살고 부모님과 함께 도란도란 저녁밥을 즐기는 상상 속 정상가족에 대 결핍을 가지게 되었고, 그와 상반되게 밤 11시가 넘도록 일을 하는 어머님 아버지를 두 눈으로 사무실에 앉아 바라보며 난 돈과 대한 갈망을 가지게 되었다. 난 많은 돈을 벌고 이를 충분히 영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부자가 되고 싶었다. 

 

계급 상승의 욕구, 더 이상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결핍으로 가득 찬 과거, 정상가족에 대한 갈망, 그에 따른 돈에 대한 열망.... 그것들은 소금물처럼 마시면 마실수록 더더욱 갈증을 만들어냈고 지금도 날 목마르게 했다. 그것들이 지금의 나를 끌고 나가는 강력한 Drive 동기가 되었지만 지금은 거의 다 아물었지만 열등감이라는 상흔을 남겼다.


그래서 난 공무원의 월급으로 만족할 수 없는 듯하다. (시급) X(시간)으로 돈을 버는 '부의 서행 차선'의 공식은 한계가 명명백백하고 그런 공식으론 내가 만족할 만한 부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판매개수) X(개당 이익)의 방정식으로 돈을 버는 '부의 추월차선'을 나는 걷고 있다. 덧셈 방식이 아닌 기하급수적으로 돈을 긁어모으는 게 더 많은 돈을 더 빨리 벌 수 있으니까!

 


즐거움


그런 의미에서 부업은 n잡은 나에게 매력적인 option이다. 글을 쓰는 지금 난 복권을 긁는 두근거림이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글을 볼까? 글에서 시작해 어떻게 더 발전해나갈까? 썸네일은 어떻게? 키워드 분석법이 있다는데 적용해볼까? 인스타 매체에 적합하게 글을 적어볼까 등등. 배워야 할 것이 많고 나아가고 그에 따라 돈과 명예,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날 두근거리게 한다.


부업 리스크가 크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분야를 체험, 그 분야에서 돈을 벌 수 있는지 확인하는 행위이다. 난 현재 자본 리스크는 없이 시간과 관심을 투자하고 있지만 이따금씩 괜찮은 조회수를 만들어내는 글들을 보면 즐겁다. 또 하나의 일이지만 영혼을 갉아먹는 일이 아닌 영혼을 풍족하게 하는 일이기에 난 기꺼이 이것에 내 시간을 투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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