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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업하는 선생님 Jan 06. 2023

'영끌'의 시대 되돌아보기


춘몽과도 같은 투자의 시대가 종막에 다다랐다. 누군가는 아직이다, 반등할 수 있다라는 일말의 희망을 가질수도 있겠지만 과거처럼 돈 놓고 돈 먹는 그런 시대는 끝이 났다는 걸 난 확신한다. 모두가 상승! 상승! 을 외치던 투자의 광풍은 이제 물가상승과 금리인상의 소식 속에 사그라졌다. 주식, 부동산, 가상화폐 모두가 바닥을 치고 있고 모두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잠재적 폭탄을 하나하나 터뜨리며 자멸하기 시작했다.


'벼락거지'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던 시대는 정말 영끌족들을 '거지'로 만들며 상투 잡힌 영끌족의 통곡 소리만 남겨졌다. 


출처 : 동아일보





가난은 멍청하기 때문에 생겨난 거야



지난 투자의 시대에 들었던 가장 인상 깊은 돈을 벌고 싶은 이유는 '부끄럽게 살기 싫다.'였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가 미쳤던 것 같다. 돈이 없다는 것이 죄책감과 수치심의 대상이 되다니. 하지만 그때는 그러했다. 


하늘 끝까지 치솟는 주가와 몇 백 퍼센트 씩 상승하는 가상화폐를 바라보면 투자를 안 하는 사람이 바보였고, 실제로 투자로 성공한 신흥 부자들을 바라보면 투자를 안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이었다. 경제적 실패는 더 이상 '기회의 박탈', '개인의 부족함'이 이유가 아니었다. 경제적 실패는 '용기 없음', '우둔함', '멍청함'의 의미였다. 


주위에 산재해 있는 노다지를 보아라!
다가가서 줍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왜 잡지를 않느냐?
주변 사람들을 보아라. 모두가 저 황금을 얻지 않았느냐? 

시대가 사회가 주변 사람이 모두가 우리에게 말을 했다. 그땐 투자하지 않는 사람은 용기 없고, 눈앞에 기회도 잡지 못한 바보였고, 열등한 사람이 되었다. 






무한한 욕망과 두려움


우린 노동과 안전한 방식으로는 유의미한 재산 축적이 불가능한 사회에 쳐해 있었다. 집값 폭등은 내 집 마련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다 덩달아 늘어난 주거비는 생활에 압박을 느끼게 한다. 저출산 고령화로 노후에 국민연금을 수령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취업은 어렵지만 근로 소득은 '투자 소득'보다 한참은 부족했다. 어느 세월에 돈을 모아 집을 사고 결혼을 한단 말인가? 


덩달아 사회는 우리 인간의 욕망을 부추긴다. 우리들에게 무제한의 기대를 갖게 했고 우리들이 생각하는 '평균'을 끌어올렸다. FLEX 문화, 돈자랑, 차 할부를 이용한 차량 판매, 외제차, 샤넬, 루이뷔통, 에르메스 가방. 우리와 무관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우리 눈앞에 흔들었다. 인스타그램 광고와 게시물, 유튜브 VLOG, TV 속 연예인의 삶 모든 것들이 명품을 구매하는 것,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더 좋은 것들을 입고 먹는 것이 보람되고 '당연한' 국룰처럼 느끼도록 상황을 조성했다. 평균 올려치기, 과대망상에 우리는 빠졌고 허상과 허세를 좇게 되었다. 


가진 것에 만족하면 가진 것이 부족해도 부자가 될 수 있는데... 이 사회는 제한의 기대를 갖게 만들어, 과거 야만인보다 우리를 괴롭게 만들었다. 우리가 삶에 필요한 필수품들은 기실 얼마 되지도 않다.





흙수저 신화 


벼락부자와 함께 등장한 신흥 유튜버들. 더 많은 주목을 이끌려는 유튜버들의 경쟁은 모두가 자극적인 스토리를 생산해 냈다. 흙수저 출신의 주인공이 투자의 성공해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 너무나도 달콤했고 매력적이었다. 주목과 관심이 돈이 되는 이 시대 그들은 '경험'과 과장된 이야기를 팔아 돈을 벌고, 자신들의 투자 비법, 투자 기술들을 판매해 또다시 돈을 벌었다. 아니 어떤 인간들은 이야기조차 꾸며낸 거짓일 있다. 


돈을 버는 방법을 판매하는 사람들은 '월 천', '100억 자산'이라는 타이틀로 추종자를 이끌었고 일종의 종교를 만들었다. 종교의 정의란 '초월적 존재를 믿고 숭배하여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얻고자 하는 정신문화'라고 한다. 이 새로운 교주들은 물질주의 사고방식과 유행에 대한 갈망과 가난에 대한 부끄러운, 사회의 하층민으로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달콤한 말로 해소해주고 추종자를 만들었다. 그들의 경전은 유튜브, 영상 강의, 책이었다. 그 종교의 기도는 교주의 음성이 담긴 영상을 보고,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고, 투자하고 부업을 실행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서비스의 판매자들은 진심으로 자신의 방식에 대해 자신감이 있고 숨김없이 알려주고, 그것이 올바르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거짓과 기만보다 선의의 의미로 판매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장밋빛 이야기로 제품을 판매했고, 돈을 번 이상 그들은 비판을 피하기는 힘들 것이다. 지금 누군가가 그들의 말을 듣고 투자를 했고 막대한 손실을 본 이상 그들이 물질적, 법적 책임은 없더라도 감정적 도의적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멀찌감치 뒤에 물러나 되돌아보기 


투자의 시대는 끝이 났고, 파티는 쫑 났다. 광기는 이제 분노로 바뀌었고 기회의 문은 닫혔다. 투자를 배우고 노력한다면 부자가 된다는 공식은 이젠 최근 몇 년과 같이 단기간에 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이 광기의 시대를 회고하며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은 이 시대정신, 사회의 흐름에 현혹되어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건 아닌가?


당신은 다음에 이런 흐름이 등장하면 기회는 붙잡고, 광기에 안 미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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