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타향살이를 위해
유학 생활이라고 하면 뭔가 거창하게 들리지만, 삶은 계속 이어진다. 장소는 변했지만, 내가 여전히 나인 것은 변함이 없다. 아무리 멀리 떠나왔어도 본질적인 것들은 그대로이다. 때로는 그런 것들이 불만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타향살이라는 단어를 새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문득문득 기습 공격당하는 것 같은 때가 있다. 사무치게 외롭지만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기도 하고, 모지리가 된 것 같은 느낌에 혼자 머리를 쥐어박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서럽고 억울해하기도 한다. 누구나 저마다의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외로 훌쩍 떠나온 것도, 서울에서 자취를 하는 것도, 새로운 가족을 꾸려 이사를 하는 것도. 몸은 여전히 고향에 가족과 있지만 그곳에서 배척당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면 그 또한 외로운 마음의 타향살이겠지.
타향살이에 마음이 다칠 때에는 칼을 잡고 식재료를 썬다. 이불속에서 엉엉 울고, 머리를 콩콩 쥐어박으면서 자책하는 것은 이미 많이 해봤다. 그러니 또 해볼 필요는 없다. 오늘이면 곧 갈 것 같은 냉장고의 채소들을 죄다 꺼내서 씻고, 썬다. 냉장고가 비워지는 만족감과 식재료를 남김없이 썼다는 뿌듯함도 잠깐. 속상했던 마음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려는 찰나, 지글지글 보글보글. 불 위에 음식들이 자꾸 딴생각하면 다 태워버리겠다고 속삭이는 것 같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요리를 한다. 완성된 요리는 소중한 내가 먹는 것이니 정성껏 예쁘게 담는다. 여기서 포인트는 음식은 맛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슬픈데 음식까지 맛이 없으면 그만큼 비참한 것이 없다. 음식을 먹으면서 '그래,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뭐 어때. 괜찮아.'하고 생각해본다.
내 밖에서 이루어지는 시끄러운 것들은 내가 어찌할 수 없지만, 내 마음은 내 것이니까. 그것만큼은 이리저리 휘둘리게 두지 않는다. 다른 이가 나를 함부로 대한다고 나도 나에게 함부로 굴지 않는다. 이것이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어려운 것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