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언니 Oct 17. 2023

다 같이 떠나는 혼자 여행

얼마나 신나는지 알고 나면 당장 짐 싸고 싶을걸요


여행 좋아하시나요? 저는 꽤나 즐기는 편입니다. 기동력이 안돼서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여행이 주는 즐거움과 채워짐을 언제나 원해요. 언제부터 여행을 좋아했는지라고 물으신다면 아주 어릴 때부터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낭만 있으셨던 부모님은 여름마다 꼬꼬마였던 저와 언니의 손을 잡고 세계일주도 거뜬할 것 같은 백팩을 메시고는 시외버스와 마을버스를 갈아타며 계곡으로 갑니다. 텐트는 든든하게 쳐야 해요. 일주일 정도 지내기에 문제없을 만큼요. 산새소리의 모닝콜에 기지개 한번 쭉쭉 펴고는 물놀이부터 하고 아빠의 묻지마 꽁치찌개와 다디단 수박을 먹고는 또 물놀이를 하다 거하게 낮잠 한숨 자요. 이 루틴이 전부인데 그때는 왜 그렇게 집 가는 날이 다가오면 그렇게 슬펐는지. 여행의 피날레는 집에 얼른 짐을 던져두고 병원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감기로 마무리되는 일정이었죠. 바다보다 계곡을 좋아하는 건 어린 시절의 이런 추억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조기교육은 여러모로 빛을 발하는지 여행 떠나는 일에서는 두려움이 없는 편입니다. 위기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든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감사하게도 그런 일을 경험한 썰은 책 한 권까지는 아니더라도 열 페이지 정도는 거뜬히 채울 자신 있습니다.


여행 멤버는 주로 가족이나 친구, 지인 정도입니다. 그 시기에 마음 맞는 사람과 떠난 여행은 대부분 즐거웠고요. 오만정 다 떨어지는 여행멤버를 아직까지는 만나지 않은 건 큰 축복(?) 임을 나중에 알았지만요. 직장생활을 하다 뒤늦게 다시 학교로 들어간 터라 연차를 쓰지 않고도 합법적으로 놀 수 있는 여름방학만 기다리곤 했습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직장을 다니다 보니 같이 여행 갈 날짜는 맞추는게 쉽지 않아 결국 직장인들의 로망인 평일로 줄 세워 3박 4일 나홀로 강원도 여행을 떠났답니다. 캐리어에는 편하게 입을 수 없는 화려한 옷들과 책, 메모지까지 한가득 챙겨서 말이죠. 나중에 보니 꽤나 설레었던지 새벽기차를 탔는데도 자지 않고 끄적거린 글들이 꽤나 되었습니다. 관광업계에 종사하는 언니 찬스로 숙박이 해결되면서 그때까지만 해도 없던 말인 호캉스를 제대로 했죠. 보송보송하게 샤워를 하고 멋지게 차려입은 옷으로 호텔 조식을 먹고 책과 메모지를 챙겨 라운지 카페에서 오랜 시간 책을 읽어요. 오후쯤에는 택시를 타고 근거리 시내로 나가 구경을 좀 하고 먹을 것을 사 와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이것이 3박 4일의 모든 일정이었는데도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너무 아쉽더라고요. 물론 조금은 심심해져서 가고 싶은 마음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저에게 더 있고 싶어?라고 물으신다면 응 이라고 답했을 거예요.


이때의 기점을 시작으로 다 같이 가는 여행의 사이마다 혼자서 떠나는 일정을 끼워 넣으며 여행의 발란스를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밥보다 카페를 좋아하는 취향은 카페 식당 카페 카페로 줄 세워 다녀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고, 그저 재미있고 가보고 싶은 장소를 가보고 싶은 시간에 훌쩍 떠날 수 있는 것도 혼자 여행의 묘미죠. 함께 떠나는 여행에서는 혼자서 끌어올리기에는 한계가 오는 흥과 혼자였다면 가보지 못했을 장소와 식당 그리고 평소에 나누지 못했던 대화들까지. 누군가와 같이 가는 여행의 장점도 혼자 하는 여행만큼이나 손에 꼽을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여행으로 채워지는 것들은 다채로우며 그러기에 삶의 여정에서 여행은 빼놓을 수 없습니다.


혼자서 가는 여행은 재미없다 라거나 혹은 집 나가면 고생이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일 년에 한 번 정도 떠나보세요. 예상대로 흘러간다면 야무지고 똑똑하게 격파해 나가는 나 자신이(우리가) 대견스럽고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변수에서 주는 스릴과 추억을 얻을 수 있는 건 여행이 유일한 것 같으니까요.



이전 06화 분노, 먹는 건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