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몸도 마음도 작아진 내가 있었다
아침과 저녁의 기분이 다르고 그 다른 기분을 어떻게 분출할 줄 몰라 흔들렸던 10대.
그때는 혈기왕성했다. 무작정 밖으로 나가 뛰기도 하고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공수한 알코올을 홀짝 거려보기도 했으며(죄송합니다...) 날 것 그대로 내 안에서 뿜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응어리를 사회에 분출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때는 그게 가능했다. 수용 받을 수 있는 나이였던 것이다.
지금은 꽤나 많은 것이 변했다.
날 것 그대로 분출하기보다는 삼켜야 할 때가 있고 어떤 것은 그저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졌으며 벽과 마주하고는 궁시렁 궁시렁 거리다 보면 조금은 나아지기도 했다. 세월의 시간이 쌓이면서 성인군자가 되었다기보다는 그저 타협하는게 편하다는 걸 알아버렸고 무엇보다도 혈기왕성... 하지 않다.
엄마와 저녁마다 보는 일일드라마에서는 어른들이 뒷목 잡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왜 아무 말하지 않고 뒷목을 잡는 거지? 그냥 말로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최근에서야 이유를 알았다. 왜냐면 내 손이 뒷목으로 향하고 있었거든.
'아가야, 그게 말이지 그만큼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게 아니란다.'
허리염증이 재발하면서 이런저런 일들이 겹쳐왔을 때 병원으로 가서 내가 한 말은 "선생님, 저 왜 오늘은 허리보다 목이 더 아픈 거죠?"
"거기는 긴장하거나 급격하게 스트레스 받은 일 있을 때 아픈 쪽인데 (촉촉한 눈빛으로)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았어요?"
아뿔싸...
머릿속을 스쳐가는 몇 가지 일이 있더랬다. 직장에서의 변화, 동생의 이사, 만남과 이별까지. 이 모든 일이 한 두 달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처음 겪는 일도 아닌데 하며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고 마음이 안 받아주니 몸으로 오는 거였다. 차분하게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장점 중에 하나가 단단한 맨탈이었는데 날마다 그런 건 아니었군. 그러고 보니 음악 재생해 주는 사이트의 최근 검색어는 '차분한 노래', '잔잔한 음악', 'inner peace' 였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위축되었었구나. 작아져 있었구나. 불안해하고 있었구나..
그제야 한 방울 두 방울씩 눈물이 떨어졌다. 울어버리면 외면하고 있었던 어두운 상황을 인정해 버리는 것만 같아서. 그럼 정말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래서 마주하고 싶지 않았는데...
예상대로 달라진 건 없었다. 직장에서의 변화도 여전하고 동생의 이사는 아직 함께해야 할 것들이 있으며 이별한 그 사람과의 재회는 없었다. 병원에서 시작된 몸의 노크는 '그럴 리 없어' 하며 나만 모르고 있었던 모든 감정들을 마주하고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절정으로 치닫는 황금기의 30대라고는 하지만.
제일 부지런히 제일 열심히 뛰며 채워야 하는 나이 라며 입모아 말하지만.
그렇다. 지금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한 발자국을 걸어가며 버텨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마지막이 어두움일지 빛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