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나무의 봄

2026년 4월 6일 (흐리다 맑음)

by Stella Lee

하루를 반성으로 시작해서 반성으로 끝낸 지 꽤 되었다.


왜 못 했을까.

왜 안 했을까.


그 답은 대체로 이러했다.


귀찮아서.

지쳐서.


그리고 아파서.


오늘도 지치고 아파서 종일 집에 머물러 있었다.

아직도 내 정신줄을 잡고 흔드는 불안과 힘겨루기를 하며 오전을 보내다가, 가급적 매일 1장씩 채우려고 노력 중인 다이소 드로잉북을 꺼냈다. 가격도 저렴하거니와 엽서 크기여서 체력이 약한 내게는 부담이 적다는 것이 선택 이유다.


어제 산책길에서 눈길을 끌었던 것 중, 화사한 봄날과 어울리지 않게 비쩍 말라서 삐죽삐죽 가시가 돋아 있던 엄나무를 그렸다. 보기에는 살벌하지만 약재로도 쓰인다는 착한 나무다.


착한 나무라서 더 예쁘게 그려주고 싶은 마음을 몸이 따라주지 않아 속상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1일 1 그림일기 작성이라는 나와의 약속을 지켰으니 적당히 만족하자고 스스로 다독이며, 마무리의 의미로 종이 한구석에 날짜와 사인을 남겼다.


인간은 애당초 구현할 수 없는 완전무결함을 추구하는 성향이 심신의 건강에 결코 이롭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가 바로 나다.


요즘 들어서는 (비록 거짓말은 하지만)기계적 완성도를 뽐내는 AI의 출현으로 인해, 엉성하고 허약하고 불완전한 부분이 인문학적 美를 완성하는 핵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니 때로는 반성을 거르기도 하자.

남들 다 꽃 피우는 봄에 나만 싹 하나 틔우지 못했다고 한탄하지 말자.


벚꽃에는 벚꽃의, 엄나무에는 엄나무의 좋은 계절이 있는 법이니.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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