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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수집가 Jun 29. 2020

힘들면, 냉면을 먹어라

조카가 지난 어버이 날에 전화를 했다.

일 년에 두 번 명절날 얼굴 보는 것 외엔 웬만해서 전화를 잘 안 하는 녀석인데 때가 때인 만큼 안부 겸해서 외가에 전화를 한 거다.

그놈의 조카가 뭐라고 언니 전화를 받는 것보다 녀석의 전화받는 게 더 반갑긴 하다.


지난주에 녀석이 또 전화를 했다.

엄마가 전화를 받았는데, 힘들지 했더니 "뭐 저만 힘든가요?" 하며 그냥 웃더라나.

엄마는 위로겸 언제고 냉면 먹으러 오라고 했더니 갑자기 목소리에 생기가 돌면서 "냉면요?" 하더란다.

"그래. 할머니가 냉면 맛있게 하는 비법을 알아냈어. 얼마 전 해 먹었는데 사 먹는 것보다 맛이 좋더라."

어릴 때부터 뭐든 외할머니가 해 준 음식은 맛있다고 잘 먹는 녀석이었다.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는지 7월에 초에 먹으러 오겠단다.


엄마는 다음 날부터 손녀 먹이겠다고 이것저것 재료들을 사서 쟁여두기 시작했다.

뭘 벌써부터 챙기냐고 한마디 했더니,

"얘는 7월이래야 낼모레야. 초에 온데잔냐."

그러고 보니 그렇구나. 엄마는 손녀 냉면 해 먹일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들뜨는가 보다. 

그도 그렇지만 워낙에 깜빡거리는 탓에 닥쳐서 실수할까 봐 미리 챙겨두려는 마음도 있으리라. 


녀석의 전화와 냉면 먹으러 오겠다는 말이 반갑긴 한데 생각할수록 안 하던 짓을 하니 좀 의아스럽긴 하다. 

나만 힘든가요 했다니 진짜 힘든가 보다 싶다. 그날 녀석은 정말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순간 하필 생각난 게 외가였을까?


힘들고 외로울 때 무엇인가를 먹는 것만큼 힘이 되고 든든한 것도 없지. 더구나 좋아하는 외할머니가 해 주는 음식인데.

그래, 힘들면 외가에 와서 냉면을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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