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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수집가 Aug 07. 2019

전쟁 중 사랑을 한다는 건...

감독: 더글러스 서크

주연: 존 게빈, 릴로 벌버 등  


줄거리

1944년,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보름간 휴가를 나온 독일 병사가 한 아름다운 여인과 운명적인 불같은 사랑에 빠져 결혼식을 올리고 꿈같은 신혼을 보내지만 곧 다시 전장으로 돌아간다. 전장으로 온 그는 전쟁 와중에 아내가 보낸 편지를 읽고 있다가 자신이 구해준 지하 조직원의 총을 맞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네이버에서>


전쟁은 미친 짓이다.

그러나 전쟁을 해야 한다면 전쟁만 해야 한다.

전쟁 중 딴짓을 하면 안 된다.

예를 들면, 영화 중 포탄이 마구마구 날아 어디에 떨어질지도 모르는데

물웅덩이에 맥주 오크통을 발견했다고 좋아하며 주우러 간다면 포탄 맞고 죽는다. 

그는 바로 전 옆의 동료 병사와 아내가 보험을 들 줄 모른다며 농담을 주고받았었다.

그렇게 전쟁은 잠시도 주위를 놓치면 개죽음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차라리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은 그렇게 주위력이 뛰어난 존재가 아니까. 물론 강도 높은 훈련을 하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에 몰입해야 할 때 오히려 그것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 또한 인간의 본능이다. 그것을 무엇으로 막겠는가. 잠깐의 딴생각, 딴 행동 조차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또 그에 대한 대가가 죽음이라면 확실히 전쟁은 미친 짓이다.


하지만 더 미친 짓은 전쟁 중 사랑을 한다는 것이다.

전쟁 중 사랑을 하면 오히려 로맨틱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영화 속 주인공은 오히려 사랑을 하지 않았다면,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사랑하는 아내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받지 않았다면 그는 휴머니스트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냥 전쟁 기계가 돼서 열심히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던가 산다면 명예훈장을 받을지도 모른다.


전쟁의 참혹함을 알고, 휴가 중 사랑을 알고, 자신의 아이가 아내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데 어떻게 휴머니스트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건 개인의 생각이고, 변화일 뿐 전장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말미에 그는 정말 선한 사람이 되어 (또 거기엔 얼마간의 용기도 필요했으리라) 전쟁 포로들을 풀어주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그 포로중 한 명이 쏜 총탄을 맞고 개울가에서 죽는다. 임신했다는 아내의 반가운 편지를 놓친 채 말이다. 누구는 그래서 하늘로 둔 머리 검은 짐승 거두는 게 아니라며 게거품을 물지 모르지만, 난 이 마지막 엔딩 장면이 꽤나 충격적이면서 동시에 처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건 전쟁의 모순을 그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레마르크의 원작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사랑할 때가 죽을 때(라니!)로 읽히기도 한다.

1959년 작    

영화사적으로 보면,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며 그것을 반대하는 일군의 영화들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플래툰>이나 <쉰들러 리스트> 등이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그 이후 더 이상 작품을 꼽을 수 없는 건 내가 이런 유의 영화를 즐겨보지 않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영화판이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기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기껏 만든다는 게 마블 히어로물 아닌가. 기껏이란 말 썼다 기껏 뺨이나 맞을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 정말 괜찮다. 기대 안 하고 봤다 진정성이 느껴져 고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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