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 여섯 번째 이야기
드디어 오늘의 숙소가 있는 헬라에 도착! 우리의 두 번째 숙소는 생각보다 작았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 식사도 공용 휴게실에서 해결. 방에는 침대 두 개와 세면대만 있다. 두 사람의 캐리어를 동시에 펴면 방을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다. 역시, 모든 행운에는 대가가 따른다. 유난히도 저렴한 가격에 올레! 를 외치고 냉큼 결제를 마쳤는데. 저렴한 이유가 있었다. 숙소 문을 연 순간, 예상과는 다른 모습에 당황했지만 이 추운 날씨에 따뜻하게 몸 뉘일 곳만 있다면야. 이 정도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생각보다 아담하고 침대는 푹신하다. 걱정 고민은 그만하고 현재에 감사하자.
그리고 고민하면 뭐할 것인가,
디르홀레이부터 스코가포스까지 하루 종일 여기저기를 많이도 돌아다녔다. 숙소에 짐을 옮기고 정리하고 나니 금세 저녁 시간이 돌아왔다. 그동안은 캐리어에 담아온 재료들로 간신히 끼니를 연명했지만 오늘은 너무 피곤하다. 처음으로 외식에 도전하기로 했다.
사실 아이슬란드의 물가가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는 건 이미 한국에서부터 들어온 유명한 이야기다. 때문에 어느 정도 각오도 했고, 최대한 식비를 아끼기 위해 캐리어에 식재료를 잔뜩 담아오기도 했다. 인터넷에 회자되는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아이슬란드에 도착해 처음 가 본 마트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요거트 하나에 3천 원을 훌쩍 넘어가고, 라면을 사려해도 한국의 몇 배는 줘야 한다.
레스토랑에서는 더했다. 애피타이저를 메인 디시급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선뜻 이것저것 사 먹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 무언가를 요리하기에는 상황이 허락지 않는다. 방에서는 조리조차 할 수 없고 휴게실에서도 간단하게 데워먹을 수 있는 정도다. 하여 과감히 외식을 선택했다. 그래도 이왕 밖에서 먹기로 했으면 제대로 된 요리를 먹어봐야 후회도 없지 않겠는가. 결심하고 근사한 레스토랑을 찾았다.
아이슬란드에서도 소도시인 이곳 헬라는 생각보다 음식점이 많지 않았다. 다행히도 마침 우리가 머무는 호텔 바로 맞은편에 평점이 괜찮은 레스토랑을 발견, 바로 짐을 챙겨 방을 나섰다.
오늘은 호화롭게 제대로 먹어주마! 마음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모두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괜히 잘못 주문해서 엄청 뒤집어쓰면 어떡하나. 저렴한 메뉴를 주문했다고 서비스가 별로면 어떡하지. 잔뜩 긴장한 채로 함께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크지만 생각보다 아늑하다. 캐주얼한 가정식과 버거 등을 파는 곳 같다. 주위에 음식을 먹고 있는 손님들을 보니 편하게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대표 메뉴는 버거인 듯했다. 다행이다. 낯선 곳에서는 익숙한 것만큼 안전빵(?)도 없다. 우리도 대세를 따르자. 각자 햄버거와 치킨버거를 시키고 여유롭게 레스토랑을 눈으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옆자리에는 정다운 노부부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음식을 나눠먹고 있다. 인자한 주인아저씨는 가게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는 쪼끄만 동양 여자애들이 신기한가 보다. 우리에게서 시선이 거두어지지 않는다. 살짝 들여다보이는 카운터 너머 주방에서는 버거를 만드는 셰프 아저씨가 수다스러운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계속 이야기를 하며 고기 패티를 굽고 있다. 여유로운 표정에 '프로페셔널'함이 묻어난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우리는 ‘제발 패스트푸드보다 맛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소박한 기도를 하며 버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주인아저씨의 서빙으로 드디어 버거 세트가 나왔다. 한국에서도 먹었던 익숙한 비주얼이다. 갓 튀긴 감자튀김과 함께 나온 버거들은 한국에서 먹던 것보다 훨씬 커 보였다. 역시 서양(?)의 스케일이란. 인정? 어 인정..
없어질세라 서둘러 각자의 버거를 입에 물었다. 한 입 베어 먹은 순간...
맛있다! 정말 진짜 리얼 헐 맛있다.
최고의 맛이라 기억하는 데는 우리의 허기도 한몫했겠지만 진짜 맛있었다. 함께 나온 감자튀김도 적당히 바삭하고 따뜻하다. 다행히 우리의 첫 외식은 대성공이었다. 너무 맛있어 다행이었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이 맛을 잊지 못해 왠지 계속 외식을 할 것 같은 느낌. 아주 소름 끼치도록 100% 그렇게 되리라 예상할 수 있는 느낌이다.
쉽게 올 수 없는 나라이기에 오면서 여행 계획을 제대로 짜지 못한 게 너무 불안했다. 그래도 좋다는 곳은 다 보고 와야 하는데. 맛집은 꼭 먹어봐야 할 텐데. 어쩌면 이번이 인생에 있어 마지막 아이슬란드일 수도 있다. 마지막 기회를 그냥 소모 해보리는 건 아닐까. 이렇게 무작정 가도 괜찮을까.
정말 되는대로 여행하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놓치면 어쩌지, 걱정도 많이 했다.
하지만 오늘 하루를 통해 무의미한 걱정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계획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정말 괜찮다는 것을.
과식 길을 걷게 해 주었던 레스토랑의 실체가 넘나 궁금했던 이작가와 정피디. 식사를 마치자마자 호텔로 돌아와 우리가 갔던 식당을 좀 더 찾아보았다. 역시나 이곳은 헬라의 맛집 중 하나였다. 가게의 평점을 매기는 외국 사이트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은 곳으로 특히 버거 종류가 유명하다는 평이다.
버거 외에도 피자, 스테이크, 피시 앤 칩스, 수프 등 다양한 메뉴들이 있으며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치킨버거와 베이컨 버거 등. 9가지의 버거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혹시 헬라를 지나가거나 머무른다면 꼭 방문하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