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 네 번째 이야기
마치 집에 온 것 같다. 인자하게 우리를 맞은 할아버지와 그를 닮은 포근한 집까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동안의 여행에 많이 지쳤나 보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저녁을 먹고 돌아오자마자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이렇게 꿈도 꾸지 않고 푹 잔적은 참 오랜만이다. 아주 상쾌한 아침이다.
마음 같아서는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몇 달이고 머무르고 싶었지만 이제 아이슬란드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여행을 잘 마치고 우리는 돌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Life goes on. 다시 일상을 계속 이어가야겠지. 한국으로 돌아가 지금 이 순간을 떠올렸을 때, 좋은 것들만 생각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남은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오늘은 다시 레이캬비크로 돌아가는 날이다. 6시간 정도를 내리 달려야 레이캬비크에 도착하는 대장정. 하지만 그냥 출발하기엔 어제 먹었던 ‘오늘의 생선’이 자꾸 어른거린다. 이런 고퀄리티의 생선요리를 또 어디서 먹을 수 있겠는가. 출발하기 전 생선요리를 또 먹고 싶어 한국에서처럼 후사비크 맛집 포스팅을 찾아봤지만 생각만큼 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 한 건 없다. 여기저기 발품, 아니지 손품을 찾다가 후사비크에서 ‘피시 앤 칩스’로 유명한 집이 있다는 정보를 찾았다. 찾았으면 그다음은 모다? 모다? 먹는 거다!!!
출발하기 전에 딱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메뉴였다. 뚝딱 짐을 챙겨 트렁크에 싣고 팔미 할아버지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할아버지는 일찍 또 나가신 모양이다. 비록 하룻밤의 짧은 인연이었지만 계속 우리의 기억에 남을 팔미 할아버지와 숙소. 인사는 드리지 못했지만 대신 감사의 마음을 펜에 담아 꼭꼭 눌러 편지를 썼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라면까지 함께 선물로 남겨두고 숙소를 나섰다.
어제는 시간이 늦어서였는지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한적했는데 오늘은 사람들이 많다. 주차장에는 단체버스에서 여러 쌍의 노부부들이 손을 꼭 잡은 채 설레는 얼굴로 내리고 있다. 우리에게 맛있는 요리를 선사한 레스토랑에도 손님이 가득하다. 어제 하지 못했던 고래투어 선착장에도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길에 늘어서있다. 오전에 다시 보니 역시나 후사비크는 관광지 맞았다. 현지인보다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며 주차할 걱정은 거의 하지 않았는데 이곳은 이른 시간부터 꽉꽉 차있다. 가게와 조금 떨어진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피시 앤 칩스 가게로 향했다.
조금 걱정했는데 맛집 맞는 것 같다. 여기도 역시 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능숙하게 주문을 확인하는 캐셔 덕분에 다행히 줄은 빨리 줄어들었다. 주문은 테이크아웃 가게처럼 밖에서 줄을 서는 구조로 되어있다. 여느 패스트푸드점처럼 왼쪽 줄에서 주문을 한 뒤 오른쪽 줄에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줄을 서는 동안 가게에서 연신 흘러나오는 고소한 기름 냄새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슬쩍 카운터 너머 주방을 들여다보면 엄청난 전문가 포스를 풍기는 셰프들이 음식을 만들어내는데 정신이 없다. 감자를 깎고, 튀기고, 생선을 손질하고, 튀겨서 용기에 담고. 여러 셰프들이 마치 한 몸처럼 정해진 규칙대로 척척 일을 한다. 덕분에 많이 기다리지 않았는데도 금방 음식이 나왔다. 영국에서나 맛볼 줄 알았는데, 아이슬란드에서 피시 앤 칩스를 먹게 되다니!
두 개를 시킬까 고민하다 양이 많은 걸 보고 하나만 시켰는데, 역시 두 사람이 브런치로 딱 먹기 좋은 양이다. 주문한 튀김요리가 용기에 담겨 나오고, 먹을 곳을 찾아 항구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게 앞 테라스 자리도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후사비크의 풍경을 눈에 담고 싶어 바다를 마주한 벤치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갓 튀겨진 튀김의 온기가 용기를 타고 두 손에 전해진다. 두근두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 중 하나가 ‘갓 튀겨진’ 튀김 요리를 먹는 것. 따뜻하고 고소하고 입 안에서 바삭한 여운을 남기는 그 느낌은 아마 튀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거기에 오늘도 청명한 후사비크의 바다와 하늘까지! 풍경을 먹는 건지 튀김을 먹는 건지 모를 정도로 황홀한 맛이었다. 입에서 녹듯이 부서지는 생선살과 겉바속폭, 겉은 바삭하고 속은 폭신한 오동통 감자튀김까지. 두 사람 모두 말하는 것도 잊은 채 게 눈 감추듯 음식을 먹어치웠다. 물론 먹으면서 슬며시 용기에 고이는 기름은 살짝 무시하고 말이다.
우리가 피시 앤 칩스를 산 가게는 후사비크 내 선착장에 도착하면 바로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이름 역시 그냥 ‘피시 앤 칩스’. 주 메뉴 역시 그냥 ‘피시 앤 칩스’. 생선 튀김과 감자튀김이 함께 들어있는 요리가 전부다. 하지만 그냥 아무렇게나 지어진 것 같은 가게 분위기와는 다르게 맛은 아이슬란드에서 먹었던 음식 중 TOP 5에 들 정도로 최고를 보장한다.
생선 튀김은 그날 잡힌 생선 중 하나로 조리하기 때문에 매일 다른 종류의 생선이 사용된다. 감자 역시 주방에서 바로 손질한 놈을 그대로 튀기기 때문에 신선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생선 튀김만 주문하거나 감자튀김만 주문할 수도 있다.
주문할 때는 먼저 생선 혹은 감자만 주문할 것인지, 함께 주문할 것인지 말하고 곁들일 소스와 음료까지 말하면 끝. 종업원이 다시 메뉴를 확인하면 오케이를 외치고 옆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음식이 나오는 시간은 5분 정도. 주문만큼 나오는 음식도 간결하다. 하얀 테이크아웃 용기에 주문한 메뉴와 소스, 포크가 함께 담겨 나온다. 가게 내부와 야외에 테이블이 있으니 원하는 장소에서 먹을 수 있다. 음료도 판매하지만 일반 슈퍼보다 비싸기 때문에 따로 준비하는 것을 추천한다. 곁들일 소스는 기본으로 주는 케첩 외에 렌치 소스를 판매하지만 이 역시 생략해도 오케이.
마지막으로 추가하는 꿀 팁.
가게 앞 테이블에서 먹는 것도 좋지만 조금 걸어 나가면 바다를 마주하는 벤치 여러 개를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 먹는 것을 추천 왕 추천! 바다를 바라보며 한 입 베어 무는 대구 튀김의 맛을 본다면 결코 잊을 수 없으리라!
https://www.youtube.com/watch?v=Cx9z2dtdd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