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탄생하는 순간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도

by 스텔라

가끔 나의 안부를 물으며 다음 책의 안부를 함께 묻는 다정한 사람들을 만난다. “뭐 하고 지내요?” 혹은 “다음 책은 아직이에요?” 난 말끝을 흐린다. 뭐라도 쓰고 있는 날에는 작은 목소리와 머뭇거리는 표정으로 변명하듯이 “그래도 글은 쓰고 있어요.” 대답한다. 그럼 그 다정한 사람들은 난감함을 읽고 급히 사과한다. 그 말은 날 부끄럽게 했다. 그 말은 빛이 되어 내 안을 비췄다. 예의상 지나가는 말이라도 그 말은 내 방에 작가라는 거울을 걸어주고, 일상적으로 놓치고 있던 뒷모습을 조명한다.


오늘은 2월 12일, 아침에 문득 일어나서 올해는 책을 쓰겠다는 조용한 결심을 한다. 이상하리만큼 설레서 마음이 콩닥거린다. 평소 같았으면 금방 사라질 그 빛이 장렬히 쏟아져 맨몸으로 신나게 리듬에 맞춰 막춤이라도 추는 기분이 든다. 그러니 이 책이 탄생하는 순간은 지금이다. 2022년 2월 12일, 지금 여기 두 번째 책이 탄생한다. 축하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할 때면 결국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진부한 결론이 따라붙었다. 어쩐지 중간 과정을 생략한 말이라 믿을 만한지 모르겠다. 큰 그림을 본다는 핑계로 중간의 단계는 늘 휘뚜루마뚜루 넘긴다. 빙빙 도는 우회로를 택해 시간이 배로 걸리고 품이 더 든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 길의 끝에는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있다고 믿는다. 이건 객관적인 실체나 앎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다. 아무런 근거 없이 저 말을 굳게 믿고 있다.


저토록 모호하고 평범해 보이는 저 말을 실천하기란 어찌나 어려운지 모른다. 좋은 삶을 살고 있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없고, 좋은 글이 아니면 책을 내기 어렵다는 말로 치환된다. ‘좋은’이란 말은 퍽 주관적이다. 적어도 흡족하고 만족스러운 부분이 불만족스럽고 부끄러운 부분을 월등히 능가하는 삶이 좋은 삶일 것이다. 또는 부끄럽고 단점이 많더라도 아주 중요한, 독자에게도 중요시 고려되거나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전할 수 있는 부류의 글이어야 한다.



믿기지 않지만 어설픈 첫 책은 그러했다. 부끄럽고 인간적인 단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이는 아마추어의 글이었지만, 의지를 가득 담아 모험했던 용기 있는 글이었다. 그래서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쿠바라는 이국적인 장소가 배경이거나 단지 한국인이 해보지 않았을 특수한 경험을 해서가 아니었다. 내 의지와 선택으로 평소와는 다르게 마음의 소리를 따라 서브 주인공 역할을 맡기로 했고, 목표를 향한 행동을 해서 인생의 지혜를 얻고 가치를 남긴 이야기였기 때문에 부족한 점이 많음에도 세상에 내보낼 수 있었다.


위 문단을 쓰기까지 2년 반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뭘 쓰는지도 모르고 글을 썼다고 고백하는 셈이다. 무의식적인 검열 과정을 통과한 후 첫 책을 만들었지만, 나조차 2년이 넘도록 왜 그런 이야기를 썼는지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였는지 명확한 문장으로 정리하지 못했다.


출발점과 목적지만 정한 후 중간 과정은 모두 우연과 세상에 맡기는 게으른 사람인 탓이다. 아니, 그게 내게는 가장 재밌고 스릴 넘치는 놀이 방식이기에 그 엉망진창으로 경로를 그릴 수 있는 운명의 길 찾기를 즐겼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계획 없이 살다 보니 아무리 기다려도 책이 안 써진다. 일상적이고 게으르고 큰 변화 없는 이 삶 안에서 굳이 건져내 가공해서 누군가에게 보일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모든 일상을 사는 사람이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계획을 특별히 세우지도 않고 섬세하고 유려한 손길로 일상에서도 새로운 시선으로 글을 건져 올려내는 솜씨 좋은 사람이 아니기에 진심으로 책을 쓰자는 결심이 들지 않았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과거 상위 1%를 위한 디자인을 하다 이제는 개발도상국에서 사회적인 디자인을 연구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디자이너를 보았다. 자신의 재능이 그동안 ‘부’의 수단으로 소수 특권층을 위한 그다지 필요치 않은 쓰레기를 만들어왔단 걸 알게 되었고 이제는 그의 디자인이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으로 다른 이의 생존과 안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명감이 일깨워졌기에 업을 전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훌륭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다. 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그다지 훌륭하지 않은 글을 굳이 써서 출판하는 행위가 나무에게 미안한 일이고 종이 낭비라고 생각했다. 이 책이 아니더라도 읽지도 못할 책이 넘치는 세상에 나까지 하나 더 보탤 필요 없는 거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적어도 나를 능가하는 내 삶보다 가치 있는 훌륭한 무언가를 담아야 하는 거라고 기준을 높였다. 내 삶에서 도움이 되거나 가치 있는 부분을 가공해서 세상에 단 하나뿐이고 조금이나마 세상에도 다른 이에게도 유용하고 필요한 그런 글만 출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디자이너분의 이야기를 듣고 시야를 바깥으로 확장하니 완전히 다른 생각이 찾아왔다. 온갖 상품을 만들어 다른 이의 관심을 얻고 소유의 가치를 설득하는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책을 만들고 소유하는 것만큼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이왕 무언가를 만들어 보태는 거라면 그게 책이라면 좋겠다.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고 창고에 쌓여 습기를 머금고 잠들어 있다고 해도 내게는 한 사람을 닮은, 그의 인생과 철학, 시선과 사상이 담긴 이야기가 적힌 글이 어떠한 공산품보다도 아름답고 가치 있게 여겨진다. 책을 만드는 게 만일 자원 낭비라면, 가장 가치 있는 낭비가 될 것이다. 책이 모두 읽히지 못한다고 해도 매일 전에 없던 책이 사람처럼 자꾸 태어나고 만들어지는 게 아름답게 느껴진다. 인구수만큼 책에 질식할 만큼 책으로 뒤덮인 세상이 내게 지옥이 아닌 파라다이스로 느껴진다.


그러자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책을 쓰자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게 무슨 책이든 그건 아름답고 가치 있으며 창조적인 일이다. 큰맘 먹고 평소 갖고 싶던 물건을 사는 마음으로 책을 만들기로 했다. 내게 주는 선물로. 그보다 더 갖고 싶은 게 있을까? 그러니 이 책을 만드는 내내 기쁘고 설렐 것이다. 가장 귀중한 선물을 받고 싶은 열망으로 한 자 한 자 진심을 담아 아름답게 적어 내릴 것이다.


올해 주고 싶고, 갖고 싶은 선물이 책이기에 책을 쓰기로 했다.


2022.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