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글쓰기

끝나지 않고 계속 변화될 기록, 영원히 미완성일

by 스텔라
나는 포르투갈어로 쓰지 않는다. 나는 나로 쓴다.
-페르난도 페소아



천재가 부러워 시샘이 나다 못해 눈물이 흐른 적 있었다. 왜 내게 재능이 주어지지 않은 건지 조금 원망스러웠다. 운동이든 노래이든 미술이든 연기이든 어떤 기술이든 내게 재능을 줬다면 세상이 거기에 값을 얼마나 쳐주든 상관없이 흔들리지 않고 훈련하고 전념했을 텐데. 태도와 정신은 예술가라 여겼지만, 재능이 모자랐다. 그렇게 나를 업신여기는 시간은 나를 만들었다.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쓴 건 아니었다. 글쓰기는 숨긴 적 없으나 드러나지 않은 비밀 같았다. 글쓰기로 누구인지도 모를 미지의 대상에게 조난 신호를 보냈다. 털어놓지 못해 쌓인 어두운 감정과 고통의 에너지는 점점 목을 조여와 삶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었기에 숨을 내뱉기 위한 방편으로 글을 썼다. 생존 본능이었다. 누가 가르쳐준 적 없는데도 숨이 막히는 날엔 글을 찾았다. 울듯이 절규하듯 글을 뱉었다. 기능과 목적은 없었고 존재와 감정이 생생히 박힌 글, 주먹을 꽉 쥔 자리에 빨갛게 새겨지는 손톱자국을 닮은 글을 썼다. 전력 질주로 운동장을 달리며 살고 싶다며 두방망이질 치던 심장 소리의 오열은 글이 되었다. 세상에서 나를 지우고 싶은 딱 그만큼 힘겹게 그리고 기꺼이 조각을 새기듯이 글을 썼다.


나는 글을 선택한 적 없었다. 글이 나를 선택했다. 삶은 내게 글을 쓰게 만들었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든 삶의 경험 속에서 글은 필연적으로 한 줄기 빛이 되어 나를 비추었다. 불완전한 구원. 나는 글에게 나를 닮아 달라 애원했다. 날 닮은 글밖에 쓸 수가 없었다. 유려하고 재기발랄한 문체도 흥미진진한 플롯도 매력적인 캐릭터도 없었다. 내게 글은 재능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글을 쓰기로 선택한 적이 없으므로 그래서 나는 작가일 수 없었다.


내 글은 그저 온전히 나였다. 나를 모두 담을 수 없지만 담긴 건 모두 나였다. 가공은 없었고 글은 현실보다 더욱 적나라했다. 솔직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살고자 쓴 글은,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할 거라 믿었던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썼던 글은 어떤 힘도 새로운 전략도 다음을 위한 창조도 없이 그저 쓰인다. 그게 내가 쓸 줄 아는 유일한 글이었다. 그래서 살만해진 날에는 삶에서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된 다소 안정적인 날부터 나는 글쓰기를 멈출 수 있었다. 남몰래 기뻤다. 글에게 더는 빚지고 살지 않아도 될 만큼 성장했다는 징표를 발견한 것만 같았다.


내 글을 좋아한다. 많은 이가 공감하지 못해도 관심을 받지 못해도 상관없다. 감정이 넘쳐나는 글을 읽어도 절대 오그라들지 않았다. 자기애가 강한 지독한 나르시시스트 혹은 관심종자이기 때문일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글은 그저 쓰인 것만으로도 제 몫을 완수했다. 글의 탄생만으로 성공이었다. 나의 존재를 사랑한 적 없는 날에도 글에 나타난 나의 존재를 사랑했다. 기능 없이도 쓸모없이도 목적 없이도 내가 여기 살아 이런 감정을 느끼고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하루를 보냈다는 평범한 모든 글을 진심을 담아 사랑했다.



책을 만들고 나서는 내 글이 부끄러웠다. 가끔 만난 사람들이 나를 작가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작가는 이런 글을 쓰지 않는다. 살기 위해서 자신이 보기 위한 이기적인 글을 쓰는 작가는 없다. 그런 작가는 너무나 유치하고 순진하고 바보 같고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아주 가끔 내 글이 솔직해서 좋다고 내면에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들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성찰하는 자세가 드러난 글을 잘 읽었다고 칭찬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부정하기 바빴다. 고마움보다 민망함이 컸다. 크게 손사래를 치며 빨개진 얼굴로 변명했다. 그건 제가 그런 글밖에 못 써서 그래요. 나는 이런 글을 쓰면서도 한 번도 내가 글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적 없었다.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었다면 예술을 했을 텐데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아서 그저 내 마음과 정신을 글로 옮기며 살 궁리를 했을 뿐이에요.


그동안 나는 작가가 될 마음이 없었고, 글로 먹고살 생각도 없었고, 누군가 나의 글을 원하거나 누군가에게 내 글이 필요할 거라는 상상 없이, 온전히 나만을 위한 취미와 유희로써 글을 쓰는 게 좋았다.


그러나 돌아보니 긴 시간 나도 모르게 글쓰기 훈련을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설이나 시, 희곡을 쓰는 사람만이 작가가 아니고, 문학을 쓰는 것만이 재능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인제야 알게 되었다. 업신여기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이제는 구분도 안 될 재능을 발전시켜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깊이 내려가고 싶었다. 말로는 전할 수 없는, 보이지 않고 엉켜 있는 복잡한 심연을 들여다보고 시간을 오래 들여 탐색한 후 조금씩 드러나는 내면의 이야기를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글쓰기. 나의 이야기. 가족으로 지내도 친구로 오래 지내도 다 알 수 없던 그러나 내가 느끼기엔 진짜 나 같은 본질이 담긴 이야기, 삶으로 겪어 온전히 내가 알게 된, 이론이나 지식이 아닌 몸으로 소화한 통찰과 지혜, 끝나지 않고 계속 변화될 기록, 영원히 미완성일, 생명을 닮은 한 일상에 밀착된 존재로서의 글쓰기.


이제껏 삶을 바쳐 썼던 글이 이런 글쓰기이고, 꾸준히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이런 글을 쓰기 위해 훈련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글이라면 내겐 재능이 있었다. 그런 글을 계속 쓰고자 놓지 않고 노력하는 재능이었다.



어둠을 홀로 간직하는 게 힘이 들어 처절한 슬픔과 농도 깊은 우울함이 밴 염세적인 글을 썼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그런 삶을 살 땐 그런 글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왜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고 뭐가 불안하고 두려운지 낱낱이 적은 비극적인 글을 썼다. 그러면서 누가 읽지 않길 기도했다. 슬픔과 절망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갈까 두려웠다. 글쓰기를 멈출 수 없었지만 내 글은 세상에 해로워 보였다.


그러나 이젠 안다. 어둠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글로 현현하는 그 과정은 기쁨을 하나씩 껴안고 글로 변환하는 과정과 꼭 같다는 걸. 내 글에 짙은 우울함과 절망을 담을 수 있다면 설렘과 행복 축복도 글에 딱 그만큼 담을 수 있다는걸. 사라지고 싶은 마음을 고스란히 전할 수 있다면 세상이 아름답고 우린 생명밖에 모르며 결국 중요한 건 사랑이라는 이 마음도 전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여전히 이야기를 좋아한다. 영화도 소설도 시도 문학도 좋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된 건 지금의 내가 가장 쓰고 싶은 글은 우연히도 내가 계속 써왔던 글이란 점이다. 내 삶이 짙게 밴 내가 표현된 고유한 생각과 감정 가치관과 태도가 응축된 솔직하고 나 같은 에세이다. 그런 글을 쓰게 한 내 삶에게 너무나 감사하다. 내가 모르는 걸 너는 어떻게 알고 나를 그리로 보내주었는지.


숨쉬기 위한 본능처럼 썼던 조난의 글은 어느덧 삶을 찬사하고 창조의 기쁨에 겨워 춤추는 글이 되었다.


2022년 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