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정원

언어의 정원을 같은 눈으로 감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by 스텔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사랑을 말하기 위해서는 자기 세계에 다채로운 언어의 정원을 꾸려야 한다는 걸 배우게 된다. 중립적이고 의례적이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던 언어에 독창적인 색을 입히는 데는 품이 든다. 처음 보는 꽃과 식물을 관찰하며 볕을 쬐어주고 규칙적으로 물을 주고 섬세하게 가지치기를 하며 돌보는 일. 때론 ‘책’이라는 물성을 빌어 누군가의 정원을 구경할 때면 감탄사도 잊고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만의 정원을 만든 유려한 손길의 흔적을 경외하며 깊은 호흡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생명력을 동경한다. 언젠가 나만의 아름답고 독창적인 정원을 가꾸겠다고 결심하며 도취하기도 했고 때때로 그들의 정원을 시샘한 적도 있었다.



언어에 공을 들이고 언어를 면밀히 관찰할수록 언어가 지닌 태생적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고도로 복잡한 메시지를 주고받고 관계를 이어가고 심층적이고 다양한 생각을 실험한다.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과거와 미래로 이어진다. 만난 적 없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도 언어라는 통로 덕분이다.



그런데도 자꾸만 아쉽다. 삶에서 본 아름다운 광경을 생생히 묘사하는 게 불가능하단 걸 깨달을 때, 어제와 분명 달라진 보이지 않는 내면을 언어로 적어봐도 전해지지 않을 때, 한참 언어로 다투다가 사실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허무해질 때, 아무리 오래 함께 산다고 해도 아무리 배려하고 아무리 사랑하는데도 우리의 언어는 필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을 때, 언어의 정원을 같은 눈으로 감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수용하게 되었을 때, 한계를 알수록 점점 더 언어를 붙들고 놓을 수 없는 모순 또한 알게 되었다.



자주 재능을 떠올렸다. 나의 언어가 그들에게 닿지 못하는 건 아직 방법을 모르는 것뿐이라고 가능성을 놓지 못했다. 조금 더 섬세하게, 조심스럽게, 더 정확하게, 더 단순하게, 연습과 훈련, 그리고 '언젠가'라는 막연한 시점으로 일을 미루었다. 그건 행복한 일인데도 조금씩 숨이 막혔다. 정원을 지나치는 사람을 붙들고 가끔은 과도한 설명을 덧붙였다. 안전한 사람을 들이기 위해 감시를 하고 누군가를 쫓아내기도 하고 그러다가 아예 정원 일을 손에서 놓아두기도 했다. 풀이 자라고 날짐승이 뛰어놀고 꽃들은 억세지고 달빛에 빛나는 야생의 정원 속 길이 모두 사라지도록 말이다.



우리가 가진 건 언어뿐인데 가끔은 언어 때문에 어긋나. 언어로는 닿을 수 없는 저 끝 섬까지 함께 가고 싶어. 과호흡이 온다고 해도.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다고 해도 저기 분명 섬이 있다는 걸 아는걸. 나와 함께 가주지 않을래? 우리 바닷물에 익사한다고 해도 몇 번이고 다음날에는 저기 가자는 내 손을 힘껏 잡지 않을래? 언어는 소중하고 아름답고 야속하고 바보 같다. 영원히 언어를 놓을 수 없겠지만 언어는 날 웃게 하는 딱 그만큼 날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