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
두려움의 정점은 18살 무렵이었다. 두려움을 이해 못한 채 두려움이 점점 자라나 참지 못하고 터져버린 시기였다. 나는 상처받아 슬펐고 내 안의 큰 두려움을 억누르는데 3년의 시간을 보냈다. 내 안에 남은 건 부정적이고 슬픈 생각, 우울함, 무기력, 끝도 없이 흐르는 눈물이었다. 가족이나 주변 친구들에게 이런 나를 이해 받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내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주변에 민폐가 되는 것 같았다. 나도 감당하기 힘든 내 안의 어둠을 감히 누군가에게 이해해달라고 말하는 건 부조리했다. 그러나 나의 근원적인 욕망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모든 희망이 꺼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까지 주변에서 나만큼 어둡고 부정적인 내면을 지닌 누군가를 마주친 적이 없었다. 어둠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 진짜 내 모습을 들키면 모두가 나를 떠나갈 거라 지레짐작했고, 내가 유별나고 이상하고 끔찍한 존재로 느껴졌다. 표면적으로 우울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자책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경제적인 궁핍을 겪지도 않았고, 부모님께 버려진 것도 아니며 평범하고 안락한 삶을 영위하고 있으면서도 왜 이렇게 우울하고 고통스러운지 잘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 시절 나의 소망이자 목표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내 안의 어둠을 어느정도 몰아내어 남들 눈에 튀어 버릴 만큼 이상하지 않다는 확신이 들고나서야 어린 시절처럼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해 받고 싶은 욕망이 강했던 나는 차마 다른 사람에게 이런 나를 이해해달라 말할 수 없었다. 동시에 이런 류의 괴로움을 겪는 사람을 보면 나를 보는 것 같아 지나칠 수 없게 되었다.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무리해서 그의 곁에 있어주려 애쓰는 보상 반응을 보였다.
운이 좋게도 고등학교 시절 가족들도 주지 못했던 존재로서 이해와 인정, 사랑을 주는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꼈고, 슬픔과 우울함과 내가 가진 깊은 심연의 언어들도 나눌 수 있었다. 그들에겐 나의 모습을 개방하는 자유를 누렸다. 가족이 아닌 다른 관계에서 내가 원하던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한 셈이다. 그 후 내 생은 그런 사람들을 만나 그런 관계를 찾는 여정이 되었다(모두 무의식적으로 행해진 일이다).
20대 시절에는 이중 트랙 전략을 사용했다. 믿을 만한 소수를 엄서해서 완전한 내 모습을 보여주고,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적당히 친절하고 예의 바르며 평범해 보이는 모습을 연출했다. 내 딴엔 꽤 진화된 전략이었지만 이유 없이 답답하고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누구나 관계의 친밀도가 깊어지면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내 쪽에서는 시간보다는 나만의 기준점을 통과하는 게 관건이었다. 친해질 사람은 처음부터 빠르게 가까워졌고 그 기준은 언제나 날 이해해주고 수용할 수 있는가였다. 그 시절 내 이상형은 바다와 같이 포용력이 넓은 사람이었다. 첫 인상에서 별로 내 사람이 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에겐 아예 마음의 문을 닫고 관계를 발전시키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중 트랙 전략을 사용하며 문제가 되는 건 단체 생활이었다.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반쯤 가린 가면을 써야 했는데, 자주 가면이 답답해서 벗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처음엔 잘 지내다가도 가끔 나도 모르게 가면을 슬쩍 들어올린 것 같은, 갑자기 너무 나 같은 솔직한 말이나 행동을 하면 나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온몸에 닭살이 돋고 두려워졌다. 실제로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을 게 분명한데 때때로 나는 내가 다른 이들과 다른, 엄청 이상한 사람이라는 걸 들킨 것 같은 수치심을 느꼈다.
배신을 당할까 봐 늘 두려웠다. 내가 말하는 배신은 이해관계상 손해를 보거나 단순히 내게 등을 돌리거나 이별 통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 관계가 특별하다 믿어 마음을 열었던 상대방이 사실 내게 마음의 문을 닫고 있음을 발견할 때, 나를 온전히 이해해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관계가 알고 보니 나만의 일방통행에 지나지 않았음을 확인할 때 두려움을 넘어 공포와 절망을 느꼈다.
20대 시절엔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무의식적으로 테스트를 하곤했다. 모진 말을 하고, 우울한 기분을 드러내고 변덕스럽게 굴었다. 이래도 이 사람이 날 버리지 않을지 미리 확인하고 싶었다. 나중에 아프면 감당이 안 될 것만 같았다.
타인이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건 별 타격감이 없었으나 내가 믿었던 얼마 안 되는 소수의 관계 속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쟤, 좀 이상한 것 같아. 왜 저러지. 진짜 유별나다.’라는 말을 했다는 걸 알게 되면 세상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꼈다. 몇 안되는 그 희박한 경험은 오래도록 날 따라다녔고, 좁고 안전지대가 형성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감정과 메커니즘은 최근까지도 작동해서 나를 당황시켰다. 나를 저격했을 리 없는 갓 만난 누군가의 글이 내 얘기인 것만 같아서 밤새 끙끙되었다. 이성적인 목소리로 그 글의 대상이 내가 아님을 확신하면서도 두려움을 떨쳐낼 수 없었다. 1년 넘게 지속하며 잘 지냈던 커뮤니티에서 종교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는 그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까 걱정되어서 심장이 타 들어갔다.
내 안 깊숙이, 심연 속 근원에 자리잡은 두려움이 ‘이해 받지 못할까 두려워.’ ‘누군가 나를 이상하게 여길까 봐 두려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울증에서 벗어났고, 명상을 하며 평온해지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도 이 두려움이 덮쳐오는 순간 여전히 이성을 잃고 바보 같은 행동을 하며 문제를 일으키거나 사람들로부터 자발적으로 멀어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