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취미의 경계선에서
지금까지 돌이켜보면 제법 많은 그림책을 내왔다.
그림책 작가로 새 커리어를 시작한 지 올해까지 13권이 넘는 책들을 그렸고, 내년까지도 최소 4권의 보드북 그림책을 만들 예정이다. 불안정한 프리랜서 스케줄을 감안하면, 이 정도면 제법 선방을 쳤지 싶다.
2020년, 첫 데뷔책 '나리가 짠 햇빛 목도리 (푸른나무)'를 냈을 때에도 나를 그림책 작가로 칭하는 게 많이 부끄러웠고, 다음 차기작이 나올지 안 나올지 불투명한 터라 ‘나는 작가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한국도 아니고 무려 영국에서 첫 데뷔작이 나왔는 데도 말이다! 좀 더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껴도 되었는데, 왜 그때의 나는 왜 스스로에게 참 소심하게 굴었는지 의문이다.
상업 작품 VS 창작 작품
이렇게 여러 그림책을 그려왔지만, 내 이름을 내건 그림책이 ‘오롯이 나를 위한 그림’인가?라고 생각하면 다시 생각해 볼 지점이 많다. 각각의 그림책마다 다르다. A 그림책은 한 80%, B 그림책은 한 50%, C 그림책은 90%... 그 그림책을 온전히 나의 정체성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기에는 각각 고생한 과정도 다르고, 만족스럽게 끝냈다는 감각도 모두 다르다. 다만, 한국인이 조금이라도 나오는 책들은 외주비나 과정이야 어쨌건, 그림작가로서 개인적으로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은, 출판사가 중간에 낀 그림들은 내 자유로운 창작 그림과는 다소 다른 형태로 이 세상에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내가 그린 상업 작품과 자유롭게 그린 그림 사이에서 이런 간극이 나오는 걸까? 본디 모두, 누구의 제약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그리고 그려 지금의 그림 작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 누구를 위해 그리는가?
언젠가 인스타에서 지금은 작고한 류이치 사카모토의 릴스를 본 적이 있다. 개인 작업과 상업적인 작업의 차이에 관한 인터뷰에서, 이 분은 이런 말을 했다.
“그게 영화음악을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죠. 왜냐면 저 자신을 위한 게 아니니까요. 물론 제가 음악을 만드는 과정 자체는 똑같아요. 하지만 목적이 다릅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켜야 해요. 감독이나 제작자, 그런 사람들을 말이죠. 반면 제 개인 작업은, 저 자신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제가 프로듀서고, 제가 감독이고, 제가 주연 배우이자 모든 것이니까요. 그게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사실 정답은 없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영화감독들은 음악가가 아닙니다. 음악적으로 훈련받지 않았죠. 그래서 그들이 하는 표현 방식은 음악적 언어가 아닙니다. 그게 가장 힘든 부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번역을 해야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음악적 언어로요. 그게 제가 하는 일입니다.”
나는 늘 상업작과 내 그림과의 간극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스쳐 지나가듯 우연히 발견한 단 하나의 릴스에서 많은 해답을 얻었다.
그렇다. 상업 작품은 ‘의뢰인’을 만족시켜줘야 한다. 내가 자유롭게 그리는 그림은, 단 한 사람, ‘나 자신’을 만족시켜야 한다. 이게 결정적인 차이이다. 거꾸로 말하면, 상업 작품인데 의뢰인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그 작품은 나 자신을 만족시킬 순 있어도, 상업적으로는 실패한 작품일 수 있다.
반면에, 내가 좋아서 자유롭게 그린 그림이 나의 잠재적 의뢰인들을 만족시킨다 할지라도, 그 그림이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그건 좋은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업적으로 만족시키는 그림에 대한 감각은 다년간 쌓은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지만, ‘성공적인 창작 그림에 대한 기준’은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 상당히 신선하고 충격적인 관점이었다.
결국, 내가 좋아서 그린 그림의 클라이언트는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나만의 기준을 가진, 내 마음속에 있는 변덕스러운 의뢰인 말이다.
2. 책임을 누가 지는가?
첫 번째 내용과 이어지는 말이지만, 유형의 돈이라던지 무형의 서비스라던지, 여러 유형의 대가를 받게 되면 거기서부터 그림의 방향타를 누군가와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나만의 관점에서 벗어나 출판사의 아트디렉터, 출판부서, 그리고 글 작가의 관점이 더해져서 일종의 종합 예술이 된다. 출판업계의 경우 적으면 2-3명, 많으면 6-7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팀프로젝트가 된다.
대학교 팀 프로젝트랑 똑같다! 조장이 있으면 밑에서 PPT를 만드는 멤버, 자료 수집하는 멤버, 발표하는 멤버가 다 다른 것처럼 똑같이 진행된다. 이런 프리랜서의 사회생활도 결국 거대한 팀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이다. 그렇게 되면서 각자 팀 멤버들의 개성을 적당히 줄이게 되고 결국 우리들이 최종 목표는 ‘성공적인 팀 프로젝트’가 된다.
이런 식으로, 그림 작가뿐만 아니라 글 작가도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걸 더하거나 불필요한 걸 덜어내게 된다. 그리고 책임은 1/n이 된다.
만약 IP 프랜차이즈 작품들이라면?
비교적 규모가 작은 창작그림책 출간은 쉽다. 만약 엄청 유명한 거대 IP(intellectual property) 프랜차이즈, 즉 지적재산권이 들어간 작업은 어떨까? 마블 유니버스라던지 슈퍼맨으로 유명한 DC, 디즈니, 해리포터나 스타워즈 같은 작품의 파생 상품들 말이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이런 IP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주기적인 외주를 받고 있다. 이런 작품들은 팬덤들이 많기 때문에 큰 인지도를 얻을 수 있고, 때문에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꽤 유의미한 작품으로 추가할 수 있다.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바운더리를 크게 확대한다는 점에서 좋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명암이 있다. 브랜드 네임이 큰 작품인 만큼 작가는 큰 부담감을 갖게 되고, 때문에 정신적 소모가 큰 경우가 많다. 또한 지적재산권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내부검토 과정이 꽤 많고, 법무팀이나 라이선스팀이 관여해서 깐깐하게 심사할 가능성이 있다! 한마디로 처음에는 작품의 팬으로서 시작했다가, 작품 과정에서의 여러 제약에 결국 정신적으로 탈진할 수 있다.
이런 브랜드 네임이 큰 IP 작품들은 계약할 때 신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적당히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결국 좋은 그림이 나오니까.
3. 지속가능한 작품 활동을 위해서
비교적 빡빡한 제약이 없는 자유로운 창작그림책을 그려왔지만, 그래도 가끔 연이은 마감 때문에 그리는 게 귀찮고 짜증 날 때가 많았다.
그림이란 걸 그리려면 일단, 책상에 앉아야 한다. 메일함을 확인해서 피드백을 받고, 그것에 맞춰서 원하는 날짜까지 그려줘야 한다. 분명 내가 즐기려고 그림을 그렸는데, 왜 이렇게 그림 그리는 게 귀찮지? 난 그림이 싫은 걸까? 아 하기 싫어… 이런 생각을 한 몇십, 몇백 번씩 되풀이하면서, 한편으로는 내 작업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걸 보며 뿌듯함을 느끼는 걸 보니 나도 대체 내 맘이 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좋아하던 과거 르네상스의 대표적 화가들을 생각해 봤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생각해 보니 대부분 그들이 남긴 역작들은 죄다 의뢰로 받은 작품들이다. 비싼 물감비랑 제작비를 능히 줄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많은 성당이나 교황청이 대표적인 클라이언트였다.
혹은 영국의 한스 홀바인은 아예 왕의 전속 화가였다! 주로 왕의 초상화나 왕족, 귀족들의 초상화를 의뢰받아서 그렸는데, 덕분에 홀바인의 천재적인 묘사 능력, 사람 하나하나의 개성을 포착하는 예리함을 수많은 초상화에서 엿볼 수 있다.
네덜란드에도 뛰어난 화가들이 있다. 당시 네덜란드는 은행업과 무역으로 큰 부를 쌓았기에, 자신이나 자기 가족의 초상화를 주문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사람들이 많았다. ‘야경’으로 유명한 렘브란트와 ‘진주 목걸이를 한 소녀’로 유명한 요하네스 베르메르도 초상화를 의뢰받으며 주목받은 화가들이다.
우리가 중세 일러스트라고 말하는 Illuminated manuscript, 즉 화려한 중세 일러스트 필사본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는 낯선, 하지만 당대 최고의 삽화가들이 단 1명의 의뢰인을 위해서 몇백 쪽이나 되는 성경 필사본 하나하나에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이다. 사례금으로 온갖 보석과 막대한 의뢰비와 함께 말이다.
Illuminated illustration (금박으로 빛나는 그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얇게 판으로 뜬 금을 페이지마다 붙일 만한 권력과 재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그림 작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예로부터 그림은 본디, 아주 값비싼 의뢰였다.
마감은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다
만약 그들이 이런 금전적 의뢰를 받지 않고 작가 생활을 했다면 어땠을까? 최근 성인 ADHD로 의심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아예 단 한 점의 작품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화가들은 중간 스케치만 열심히 하다가 캔버스에 옮겨 그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당시의 유화 그림은 목탄으로 정교한 초상화 스케치를 한 다음, 그걸 그대로 캔버스에 베껴서 신선한 안료를 그때그때 배합해서 색칠해야 하는 고도의 노동이었다. 게다가 대부분 의뢰인들을 부유한 귀족이나 상인이 많아서 고급스러운 옷 패턴이나 복잡한 장식품도 의뢰인의 요구에 맞게 같이 그렸다. 지금 같은 Ctrl+C 와 Ctrl+V 같은 툴도 없으니, 그 복잡한 패턴을 일일이 조수까지 고용해서 손으로 그려야 했다.
안 하면 그냥 편할 것을, 힘들게 그리고 그걸 베껴서 색칠까지 하는 이유는 결국 마감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마감이 없었다면 아무리 창의적인 작가라도 좋든 싫든, 완성된 작품을 만들지 못했을 거다. 저렇게 천재적인 작가들도 온갖 의뢰에 골머리 썩히고 힘들었는데, 나라고 별수 있을까? 그저 세계의 하고 많은 한 명의 평범한 작가로서 열심히 정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