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그림 작가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래도 결국, 사람

by Stella

최근에 유튜브를 보다가 재밌는 쇼츠를 발견해서 여러 번 찾아보곤 했다. 특히 틱톡에서 유행하는 웃긴 쇼츠만 모아놓은 채널을 구독해서 해야 될 작업도 미루고 신나게 봤다.

그러다가… 한참 웃던 영상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를 보고 놀라는 영상이었는데, 뒤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있는 남자의 다리가 각도에 따라서 이리저리 모양이 비틀어지는 것이다. 고양이가 놀라고 있는 모습도 AI, 뒤에서 보고 박장대소하는 남자도 사실 AI, 모두 AI 영상이었다.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진짠 줄 알고 웃고 넘어간 기발한 쇼츠들이 많았을 거다.


그 이후로 쇼츠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고, 가끔씩 웃긴 쇼츠가 알고리즘 타고 올라와도 설마 AI…?라는 의혹을 지우기 어려워졌다. AI라는 걸 알고 보는 영상은 차라리 낫다. AI로 각국 정치인들을 모아놓은 패러디 쇼츠라던지, AI로 만든 요리나 쿠킹 ASMR이라던지…하지만 그저 주목받고 싶다는 이유로 마치 진짜인 것처럼 웃긴 영상을 AI로 만드는 건 솔직히 기만이지 않나.


AI 그림들을 보며


한때 인스타를 뒤덮었던 AI 그림들이 생각난다. 한창 중국발 AI generator 때문에 지브리풍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라던지 90년대 애니 느낌의 팬아트 등이 범람했던 적이 있다.


소름끼칠 정도로 잘 그리는 생성형 AI의 지브리풍 그림

그러다가 나름 인스타그램 자체 내에서 필터링을 적용했는지 최근엔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 그동안 AI기술은 그때보다 훨씬 발전했을 거다. 돈을 주고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보여주면, 충분히 책으로 인쇄를 해도 무방할 정도의 해상도로 그림을 생성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영세한 출판사나 자비로 책을 내고 싶지만 그림 작가에게 표지값을 내기 주저하는 아마추어 글작가들에게 좋은 대안일지 모르겠다. Ebook 소설 표지들은 이런 값싼 그림들이 참 많다.


최근 3년간 그림 AI기술이 발전하는 걸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세상에서 앞으로 내가 향후 10년 동안 그림작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너도나도 돈만 내면 원하는 이미지를 출력해 주는 세상인데, 심지어 앞으로는 그게 너무 평범해질 텐데… 그때에도 내 그림이 지금과 같은 가치를 유지할까? 많은 생각에 참 심란해졌다.


AI 광고가 내게 준 깨달음


그러다가 유튜브에서, 그리고 티비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사금융권 광고를 보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비교적 이름이 있는 제2금융권에서 아예 AI를 이용해서 자체 광고를 만든 것이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미국 애니메이션 같은 3D 캐릭터, 한글이 적혀있지만 실제 사람의 손으로 거치지 않은 듯한 글자폰트, 무엇보다 배경과 캐릭터의 묘한 위화감… 아무리 보아도 AI로 만든 영상인데, 노래도 AI로 만들어진 듯했다. 아마 AI로 여러 번 영상을 만든 다음 그중 가장 자연스러운 영상을 모아서 이어 붙인 듯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예전 사교육쪽으로 오랜 역사가 있던 브랜드는 아예 실제 배우대신 AI로 사람을 만들어서 광고를 만들었다. 아마 광고주들은 시청자가 회사의 기업 메시지와 가치를 잘 알아주길 바랐겠지만, 내가 광고를 보는 내내 신경 썼던 건 그게 전혀 아니었다. 바로 이 AI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였다. 이건 자연스럽나? 이건 좀 부자연스럽지 않나…? 내내 이 생각뿐이었다.


AI보다 더 나은 생각을 하라는 게 이 회사의 메시지였는데, 정작 그 회사는 광고를 AI로 만들었다. 이런 아이러니라니!

AI 보다 낫게 생각하라면서 광고는 AI라니..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았을 텐데


난 광고의 완벽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그 AI광고는 어딜 봐도 큰 흠이 없었고 기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거기에 다 들어가 있다. 정보도 잘 전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나에겐 전혀 호소력이 없었다. 오히려 그 AI광고가 지금까지 오랜 기간 다져온 원래 광고주들의 브랜드를 더 훼손시키고 있는 듯했다.


좋은 광고는 광고주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잘 설명하는 동시에 ‘회사의 격’을 높여준다. 잘못된 광고 하나로 기업 이미지가 나락이 가는 경우가 아직도 정말 많다. 광고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건데, 정작 이런 어설픈 AI광고가 원래 잘 유지하고 있던 브랜드의 가치마저 훼손시키고 있었다. 아마 AI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는 나이 든 사람들은 그냥 넘어갈 수 있어도, 디지털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과연 이걸 눈치채지 못할까?


금융 쪽이나 교육 같이 사람의 신용이 중요한 분야에서, 그저 광고 단가를 낮추기 위해 AI를 쓰는 게 과연 좋은 걸까?... 난 득 보다 실이 많다고 본다. 더러는 싸구려같이 보였으니까.


실제와 가짜 사이의 기분 나쁜 골짜기를 극복하기란...

AI가 정교해짐에 따라 오랫동안 광고업계에 종사하던 많은 디자이너들이 직업을 잃었다고 한다. 하지만 난 이런 어설픈 AI광고를 보면서 아직 이 분야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사람의 가치를 신뢰하지, AI의 가치를 사람처럼 신뢰하지 않는다. 사람형태의 AI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아직 AI가 갈길은 멀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광고에서 제품의 효능이나 효과를 부분적으로 AI를 이용하는 건 거부감이 없다. 어차피 광고는 조금씩 뻥을 붙이니까! 하지만 실제 사람대신 AI로 대체해서 사람을 만드는 건 정말 거부감이 크다. AI광고든 뭐든, 결국 제품을 실제로 쓰는 건 ‘살아있는 인간’이지 않나?


우린 실제로 살아있는 인간이 해당 제품을 실제 세상에서, 실제로 쓰고, 실제로 보여주는 실제 반응을 원한다. 실제로 살아있지도 않은 AI 인간이 제품을 쓰면서 우릴 기만하길 원하지 않는다. 이게 큰 차이다.


다시 처음으로, 손그림


최근에 있었던 에이전시 미팅에서 치프 에이전트가 언급했던 말이 생각난다. Be creative! 디지털뿐만 아니라 다양한 traditional materials을 쓰는 걸 주저하지 말라고. AI의 시대가 다가옴에 따라, 다양한 재료의 손그림들이 더 주목받을 수 있다는 언급을 들으면서 나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 그래도 앞으로 수작업 비중을 더 늘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수작업 그림은 사실 장점보다 단점이 좀 더 많다. 디지털로 그리면 바로 JPG나 PDF로 빠른 저장이 가능하고 파일을 관리하는 것도 편하다. 반면 수작업 그림은 고화질 스캔을 받거나, 크기가 너무 크면 좋은 카메라로 찍어서 디지털화해야 한다. 어차피 대부분의 출판사에게 그림을 디지털화해서 전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알다시피 수작업은 수정이 쉽지 않다! 망치기도 다수고, 그리더라도 원하는 느낌이 완벽하게 나오기 어렵다. 디지털 그림은 컴퓨터나 외장하드에 보관하면 끝인데, 수작업 그림은 보관도 어렵고 보관하더라도 좀먹거나 색이 바래지 않도록 관리도 잘해야 한다.

번거롭고, 귀찮고, 불편하지만..

무엇보다, 물감이나 종이, 드럼스캔 비용 등 작업비가 많이 나간다. 그럼 좀 싼 물감이나 붓, 종이를 쓰면 되냐고 묻지만, 싼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 물감들은 상향표준화돼서 괜찮은 브랜드가 많다손 쳐도, 수채화는 절대 싸구려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 안 된다.


붓도 인조모가 아닌, 담비나 족제비 털처럼 탄력 있는 좋은 제품을 써야 원하는 그림이 나온다. 게다가 이런 붓마저도 수명이 있어서 오래 쓰면 바꿔야 한다. 수작업의 모든 것은 AI보다 훨씬 비싸고, 그조차도 오래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수작업의 이 예측이 불가능한 부분이 오히려 매력적이다! 이 마저도 AI가 바짝 따라온다지만, 디지털 작업에 비해 수작업은 패턴화 하기에는 너무 변수가 많아서 아직 어색한 게 더 많다.


점점 우린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모를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더 사람들은 디지털이 아닌 ‘살아있는 인간의 손길’이 더해진, 노력이 깃든 그림을 더 좋아할 것이라고 믿는다. AI가 생성한 그림보다, 우리가 좋아하는 작가가 그린 원화 그림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이다. AI가 쉽게 복제할 수 없는, 사람다운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에 사람들은 기꺼이 돈을 쓰지 않을까?


AI는 모든 걸 값싸고 빠르게 생성해낸다. 효율적이지만 모든게 값싸기 때문에, 사람들은 의외로 AI 이미지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AI 그림은 소비될 뿐, 작품으로 결코 소장될 수 없는 이유이다.

번거로워도, 그리는 재미가 있어서 좋은 수작업.


언젠가 1인 출판사가 1년에 9000권의 책을 AI로 만들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무엇보다 이런 검증되지 못한 책들이 중앙도서관에 도서 보관용으로 납본되고, 납본비를 계속 받는다는 게 큰 문제다. 세금은 세금대로 새어나가고, 사람이 쓴 책의 가치는 점점 낮아지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사람의 가치를 전해줘야 할 출판사들이 AI로 책을 만들어 놓고 그게 AI로 만들어졌다는 말 한마디 없이 독자들을 속이면서 팔리고 있다는 거다. 과연 그런 책에 정 붙여서 읽고 소장하고자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광고든 책이든, 우린 AI를 통해서 예전보다 편하게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그것도 빠르게. 하지만 그 결과물에 진짜 가치를 부여하는 건 언제나 ‘사람’이다. 범람하는 AI 매체들 속에서 나만이 생성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지 많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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