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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Jan 12. 2022

엄마에게 줄 밥을 짓는 시간

엄마 기일 챙기기, 초보 제사 살림꾼에게는 모든 것이 서투르다.

  '엄마 밥 먹으러와' 동절기라 납골당 시간이 다섯 시까지 운영되는 걸 처음 알았다. 막강한 추위를 뚫고 시청 근처 산자락 아래에 위치한 납골당, 엄마에게 인사를 하러 다녀왔다. 나는 전날 극심한 가위에 눌렸었다. 무서움에 아빠를 불렀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나를 꾹꾹 짓누르는 느낌이 났다. 

  꿈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렴풋한 잔상으로 남는데 여간 꿈자리가 사나웠다. 짧은 기억으로는 눌렸던 가위 속(그러니까 꿈속) 엄마가 있었고, 나는 엄마를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정확히는 이승과 저승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 다른 길이란 걸 알면서도 붙잡으려 했다. 제사 전날 이렇게 꿈자리가 사나워도 되나. 하도 제사를 안 지내서 배고픈 조상님들이 연달아오시려나, 이런저런 생각에 점심시간까지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나중엔 속도 울렁거려 먹은 것을 계속 게워냈다. 그럼에도 준비해야 했다. 내일은 엄마 제사 지내는 날이니까.

  아빠와 제사음식 장을 보러 처음으로 시장을 갔다. 그동안은 떡볶이, 순대, 호떡 이런 길거리 음식들만 사 먹으러 갔었지 제대로 된 장을 본 것이 처음이라지. 첫제사는 원래 정성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남들 하는 거(먹는 것들) 기본은 해주고 싶은 마음가짐이 컸다. 아빠는 제사 음식이 뭐고, 상차림엔 뭐를 올려야 하는지 잘 몰랐다. 그래서 시장 한편에 제사 전문 음식과 용품을 파는 곳이 있어 사장님을 붙잡고 이건 해도 되냐, 해야 되냐를 물었다. 첫 가게에서 곶감, 약과, 유과, 밥풀떼기 과자, 황태포 등을 샀다. 사장님은 제사음식은 하다 보면 늘 것이라고 내게 조언해줬다. 엄마는 살아생전 과일, 맑은 국, 나물 등을 좋아했다.  상 위에 올려질 음식이 아니라 엄마가 식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큰 배와 사과를 아빠 본인 손으로 직접 골랐다. 마음 같아서는 넉넉하고 그럴듯한 상차림을 준비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빠는 뭐가 그리 아까운지 가격만 따져댄다. 하긴 제사를 평생 지내지 않았기에 '이것도 제사에 놓는 것인지' 헷갈렸을 테다. 그래도 같이 다니는데 괜히 내가 민망해져서 아빠에게 그만하라고 사인을 주곤 했다. 뭐든 확실해야 사는 의심병, 얼마인지 하나하나 따져 묻고 어떻게든 깎으려는 고집, 아빠와 실랑이를 하며 나는 조용히 내 카드를 내밀었다. 


  사실은 간소하게 내가 직접 혼자 장을 봐서 상을 차리고 싶었다. 아빠는 밥그릇이며 수저며 다 있지 않냐며 내게 되물었다. 그건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혹은 정말 몰라서일 것이다. 필요한 밥그릇, 수저, 초, 향 (촛대, 향그릇)은 없자니 아쉽고, 두고두고 필요할 것 같아서 내 돈으로 얼른 주문했다. 살아서도 못해줬는데 돌아가신 분에게 쓰는 돈인데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아빠는 정말 단 1도 제사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았다. 물론 나도 제사가 처음이지만. 조기와 국거리 소고기를 사니, 양손을 넘어 어깨 가득 장을 봐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소소하게 하고 싶었는데 기본 이상은 해 주고 싶은 마음, 엄마도 내게 이런 마음이었을까? 

  엄마의 기일을 준비하며 많은 것을 혼자 공부했다.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기도 했다. 덕분에 지방틀에 지방 쓰는 법도 알았다. 

  제사를 많이 하는 집들은 간소화하고 간혹 생략도 많이 한다. 그만큼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든 건 내 마음이 편하자고 하는 일, 그럼 된 거지. 나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안도감에 어떻게 제사 지내지 하고 신경 쓰던 내 마음과 함께 신경성 위염도 잦아들었다. 



  돌아가신 엄마의 기일 첫제사, 작게 하려고 했는데 내 마음이 그리 되지를 않더라. 장을 보고 아빠가 산책을 다녀온다고 한다.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단 걸 인지해서 일까, 엄마가 보고 싶어서일까 아마 둘 다겠지. 괜히 눈물이 나왔다. 아빠와 티격태격 참 웃픈 제사 준비, 어떻게 살림해야 되는지 시작을 몰랐던 내게 제사는 먼 나라 이야기였으니까. 그런데 옛 어른들이 하셨던 말씀처럼 모든 건 정성이고 마음이란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오늘은 스스로에게 토닥토닥해주고 싶은 시간이다.

 엄마의 첫 기일 -1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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