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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Jan 16. 2022

상차림의 뿌듯함(D-day) 엄마의 첫 번째 기제사

1월 14일 엄마에게 밥을 차려 주었다.

  아침부터 아빠도 나도 모두가 분주하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려고 제사를 지낸 후 1월 14일에 열심히 그날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이제야 숨 한번 돌릴 수 있어서 글을 남긴다.) 엄마 기제사가 있었던 당일. 요새는 인터넷에 정보가 잘 나와 있어 상에 음식을 놓는 위치며, 어떻게 진행하면 되는지 알 수 있었다. 잘 들지도 않는 칼로 무를 듬성듬성 썰어 소고기를 넣어 맑은 탕부터 끓였다. 껍질 깐 밤을 물에 담가 놓았다. 밤이 완전히 까진 것이 아니라 한번 더 손질해야 했다. 조기는 찜으로 주로 많이 한다기에 찜기를 찾았다. 한 번도 안 쓰고 받아만 두었던, 찜기를 꺼냈다. 아껴 쓰면 똥 되는데, 냄비도 엄마가 전에 받아두고 안 써서 새것이 있었다지. 지느러미 꼬리 부분을 자르고 껍질을 긁어냈다. 그리고 조기를 찜기에 앉힌다. 


무엇하나 금방 되는 것은 없었다. 음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하나하나 완성되는 동안 시간이 훌쩍 갔다. 미리 해놓은 음식은 밤에 상차림에 올려 둬야 돼서 잠시 베란다에 내다 놓았다. 상에 하나씩 음식이 올려지니 괜히 마음이 들뜨고 묵직해졌다. 그리고 설렜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일 년에 한 번씩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시간이 빨리 오기를 내심 바랬다. 

  이것저것 올리다 보니 상에 올린 것이 너무 많아서 자리가 부족했다. 내년에는 더 큰 상을 준비해야겠다라고 나름 계획을 세웠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한다고 하지만 나름 풍성하게 차린 것 같아 내가 다 배불렀다. 요 며칠 위염이 왔고, 음식들을 다 게워냈는데 이상하게 엄마 기일이 되자 아픈 것들이 씻은 듯이 나아졌다. 어느덧 시간이 가고 9시가 되었다. 향과 초에 불도 붙이고 술도 따른 뒤 절을 했다. 그리고 엄마 자리에 두었다. 사실 엄마는 생전에 술을 입에도 안됐다. 정확히는 하나도 못한다. 아빠는 우스게 소리로 많이 마시면 엄마 취하는데라고 읇조리며 술을 따랐다. 옛 격식대로 제사를 지내며 그 순서를 머리에 그려 넣었다. 모르는 부분은 십여 년간 친정에서 제사를 지냈던 고모가 알려주었다. 



  시장을 볼 때 오들오들 떠느라 감기에 걸린 것 같다. 절을 하고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막상 엄마가 앞에 있다고 하니 말문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또 육성으로 이야기했다. 아빠랑 나 싸우지 않을 테니 잘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리고 나도 잘 되게 해 달라고. 오늘 먹고 싶은 거 많이 먹고 가라고, 다음에도 내 후년에도 계속해준다고. 시장을 많이 본 탓에 밥풀떼기 과자가 어디서 인지는 모르지만 사라졌다. 아빠는 돈 주고 산 것인데 어디로 갔냐며 차를 갔다 음식을 두었던 베란다로 갔다 찾기를 반복했다. 


  밥풀떼기 과자 대신 엄마가 좋아했던 미왕 과자를 올렸다. 투병 당시 미왕이란 과자가 맛있다고 했는데 직접 봉투를 뜯어서 먹고 가라고 접시에 정갈하게 담았다. 엄마 기제사날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보았다. 다음 메인에도 떴고, 만 명이 넘은 사람들이 내 글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제사 준비를 하는 엄마의 글을 읽어주었다. 

이것도 엄마가 도와준 건가 라는 생각에 준비했던 과정을 되뇌며 눈물을 흘렸다. 아빠는 엄마에게 편지를 써서 낭독했다. 그립다고 왜 그렇게 빨리 갔냐고, 맞춤법도 내용도 엉성한 아빠의 편지(비문 가득)에 진심 어린 목소리가 담겨있었다. 

  처음 한 것 치고는 꽤 괜찮은 상, 나만 그런가, 엄마의 기제사였다. 문을 조금 열어두고 숟가락을 탕 탕치며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다.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란 시가 생각났다.


엄마가 생각나는 그 시, 내 마음을 대변하는 시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1월 14일 9시 50분 엄마가 돌아가신 일, 월, 시를 생각하며 내 마음은 엄마에게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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