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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Feb 03. 2022

 설날, 떡만둣국을 한 솥 끓였다

만두의 행방

설날 연휴 동안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갔다. 엄마를 보려고 납골당에 가고 싶었는데 폐쇄시켜 놓은 탓에 가지 못했다. 엄마의 손맛이 그리웠다. 레시피와 눈대중으로 만든 요리의 참맛이 다른 것은 손맛 차이다. 나는 엄마가 끓인 찌개나 국을 맛보며 '너무 맛있다' '최고'라는 리액션을 해준 적이 없다. 엄마는 그 말을 바라면서 매번 '맛있지? 마늘 채소 많이 넣었어' 라며 엄마만의 시그널을 보냈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와 추억만 남는 일들이겠지. 엄마의 눈대중과 어림잡아 넣는 간, 유난히 많이 넣었던 채소. 간이 세지 않은 심심한 음식을 좋아하는 엄마. 그리고 엄마와 다르게 나는 간을 항상 많이 넣어 맵고 짜게 먹었다. 이것도 고쳐야 되는데 음식을 만들면 하나 둘 잘못된 습관들을 고쳐주었다.


  설날에는 만둣국을 끓였다. 설날은 엄마가 쉬는 날이라, 고기, 달걀, 김 등을 떡만둣국 위 고명으로 얹어주곤 했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손길이 깃든 떡만둣국을 먹은 건 이년 전이었나. 2022년 임인년에는 내가 직접 장을 봐 떡만둣국을 끓이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설날 분위기는 내야 되지 않겠냐며 떡이며 고기, 달걀, 국간장 등 집에 없는 재료들을 구매했다. 엄마처럼 계란부침 고명을 할 자신이 없어서 계란을 풀어서 끓고 있는 떡국 솥에 집어넣었다. 아빠가 좋아하는 만두와 파도 꽤 많이 어슷 썰어 넣었다. 

 

  엄마가 직장에 다니던 때는 항상 시간을 쪼개 일주일 정도 먹을만한 국(이를테면 미역국, 된장국)을 한솥씩 해놓고 출근했다. 엄마처럼 나도 손이 커서 하다 보니 정말 한 솥을 끓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하나 문제가 생겼다. 무조건 많이 넣으면 되는 줄 알고 만두 한 봉지를 다 넣은 것이다. 


  한 끼를 먹을 때는 괜찮았는데 두 세끼를 먹으려고 다시 만둣국을 데울수록 만두가 불어났다. 또 터지기도 했다. 단순히 레시피만 보고 따라 만든 건데 만두의 행방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아빠는 연휴 동안 떡만둣국을 원 없이, 질리도록 먹었다면서 조금씩 발전해가는 내 요리 솜씨를 칭찬했다. 요리란 건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는 거고, 팁을 얻어가는 거구나를 느끼며 터진 만두를 수저 위에 올려놓았다. 

  올해 연휴는 급하지도 특별하지도 않고 잔잔하게 보냈다. 물론 만둣국을 먹은 만큼 술도 매일 마셨지만. 음식을 만들면 실수한 부분을 고쳐주던 엄마의 목소리가 그립다. 터진 만두를 입에 넣는다. 저절로 깨진 만두가 식도를 타고 몸속으로 들어간다. 따뜻해지는 기분이 온몸으로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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