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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Feb 04. 2022

아빠가 이별하는 법

아빠는 오늘도 엄마의 통장들을 정리하고 있다

  시작됐다. 모든 것들을 잊고 살기로 했었다. 엄마가 남들에게 베풀어 주었던 금액들을 가슴속에 고이 간직한 채 모른 척 살기로 하려고 했었다. 아빠와 나 우리 두 사람 의지하며 잘 살기로. 그런데 아빠는 그게 잘 안되었나 보다. 아니, 아니었나 보다. 어느 날부터 아빠는 다시 다 찾아야 그래야 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처음에 그 이유가 돈 때문인 줄 알았다. 친척들이 고인이 된 엄마의 돈에 손을 대고, 외할머니 유산을 제 맘대로 책정해 모진 짓을 해도 참았다. 그런데 그 외의 것들의 일들도 많아 아빠는 괘씸해서 참을 수 없었나 보다. 받아야 할 건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는 살아생전 힘든 이모네 집안 살림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를테면 조카들의 학비며 교복비 심지어 학원비 등등을 알음알음 송금해줬다. 꼼꼼한 성격의 아빠가 아니었다면 그냥 넘어갔을 도움을 준 이력들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났다. 마치 거기까지만, 딱.이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알고 싶은 부분까지가 마지막 페이지였으면 좋으련만 왜 이 페이지는 긴 것일까. 내 인생은 왜 이럴까. 엄마는 왜 그렇게 산 걸까. 원망도 해 보았다. 

  어림잡아 엄마가 조카들을 위해 사용한 돈, 이모 이모부 그러니까 식구들을 위해 도와준 돈은 대략 3억 가까이 되었다. '통장 다 같이 쓰신 건 아니죠?' 변호사가 물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이 통장은 흡사 공동 통장으로 보였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엄마는 분명 좋은 마음으로 돈을 송금해 줬겠으리라. 돈은 있다가도 사라지는 것이라, 얼마 얼마가 나왔다고 하면 일일이 따지지 않고 내는 성격이란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래도 몇 천, 몇 억은 너무하지 않은가. 십 년간의 통장 기록을 보며 아빠는 친척들을 위해 들어간 송금 내역을 형광펜으로 밑줄 그었다. 그리고 수기로 한번 더 종이에 옮겨 적는다. 직접 계산기를 두드려 그 내역을 옮긴다. 


  나는 돈이 아니라 엄마의 가엾은 마음이 안타까워 다시 되찾고 싶었다. 그들은 여전히 엄마가 도와줬고, 현금으로 다시 줬다는 말만 내뱉었다. 말이 되지 않는 말을 들으며 엄마가 도와준 진심을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어 더 이상 덮어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진실을 다시 처음부터 밝히려고 한다.

  아는 언니가 아빠의 행동을 보며 말하길 '그게 아빠의 이별 방법일 수도 있어'라고 말했다. 지금 정리하고 고소 준비를 하려는 건 엄마를 정리하는 한 과정일 거라고. 엄마는 돌아가셨지만 엄마가 혼자 안고 있었던 짐을 대신 정리해주노라고 생각하라고. 깔끔히 잊지 못했지만 정말 다 덮고 살려고 했다. 아빠가 힘들어 지니까.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정신적으로도 피 말리는 긴 싸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아빠를 응원한다. 아빠가 원하는 방법이 그것이니까. 

  나는 인과응보, 사필귀정을 믿는다. 진실은 밝혀질 것이고, 엄마가 아무 대가 없이 준 마음을 당연하게 받고 부정하는 그 누군가에게는 어떤 결과가 돌아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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