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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Jan 19. 2022

2차 면접 후 회사에서 연락이 없었다

연락이 없으면 속 시원하게 물어보고 순댓국을 먹는다

  원하던 직무가 있는 회사에서 2차 면접까지 갔다가 아무 연락이 없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탈락이다. 나는 면접에서는 말을 잘하기 때문에(이건 무슨 자신감인지) 웬만해서는 그럭저럭 대답을 잘하는 편이다. 1차 면접이 있던 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는데, 연말이라 임원들이 바쁘다며 면접을 앞당기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회사 사정에 맞춰 급하게 시간대를 옮겼다. 자기소개부터, 공백기엔 무얼 했냐, 전 회사에선 무얼 했냐 등 짧고 담백한 물음에 나는  물 흐르듯이 대답했다. 


  1차 면접을 본 뒤 정확히 9일 동안 아무 연락이 없었다. 직무(직종)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힘들어도 해보고 싶다는 다짐이 들끓고 있었다. 게다가 먼저 면접 제안이 온 회사라 나도 모르게 알 수 없는 '촉'이란 게 발동했다. 이쯤 했으니 붙지 않을까 라는 지레짐작이자 '느낌'이다.

  2차는 구글 미트로 이루어졌다. 1차 때 역에서 회사까지 숨차서 뛰어온 나를 배려한 것인지 혹은 대표님도 바쁜 탓인지, 그래도 9일 만에 연락이 와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애당초 대표님 면접인 줄 알았는데 구글 미트 화면에는 나를 회사로 안내해준 담당자와 HR팀장님이 있었다. 그냥 생각건대 팀에 들어갈 수 있는 상인지 인성에 대한 질문을 정말 간단하게 묻기 위한 것 같았다. 이를테면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지? 언제 일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지? 이 회사는 다른 회사와 달리 뭐가 괜찮은지 등등 다양하지만 엇비슷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렇게 끝난 2차 면접, 면접 후에는 처우 협의가 있을 텐데 그때 잘 조율하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은 빗나갔다. 


  11일이 지났다. 연말, 연초라 바쁜가? 바빠도 너무 바쁜 것 아닌가? 등 여러 가지 생각이 소용돌이처럼 얽히고설켜 들어왔다. 얼마 후 나는 스마트폰을 열어 문자를 보냈다. 기다림에 지쳐 스트레스받을 바에는 직접 물어보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인사팀 담당자는 확인 후 알려주겠다는 말만 남긴 후 아무 이야기와 피드백도 주지 않았다. 피드백은 다음날 바로 왔다. 내가 자주 쓰는 메일로 면접을 봤던 회사에서 메일을 보내왔다. 

앞 문장은 장황하게 쓰여 있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아쉽지만 이번 채용에 티오가 많이 없어서.... 그 말이 핑계인 줄은 알겠으나 내심 섭섭했다. 11일 동안 기다린 내 마음은 어떡하라고. 연락 없으면 안 된 줄 알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 마음은 편했다. 부쩍 술이 늘어가고 있었는데 그래 오늘은 '순댓국에 소주다'를 마음속으로 외쳤다. 

  요즘 들어 면접도 취업도 훌훌 털고 조금 더 쉬자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마음이 녹록지 않다. 아빠를 보면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60세가 넘어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고 전기세라도 벌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모습에 아직 난 뭐라도 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아빠는 아무렇지 않은 척 요양, 간병 구인구직을 보며 내게 어르신 목욕시키는 일인데 시급이 16000원이야 라고 말했다. 나는 '아빠 목욕이나 잘하세요. 사람 씻기는 거 아무나 하는 거 아냐'라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사실은 그 말을 하면서도 딱히 아빠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면접, 회사, 돈 그까짓 거 잊자! 아빠 나도 취업 못했는데 아빠가 왜 해라고 장난스럽게 다시 물었다. 오늘은 순댓국에 소주를 꼭 먹어야겠다. 고기와 국물을 꼭꼭 씹으면서 다음 일자리는 조금 더 나을 거야라고 외치며 떨어진 면접은 후루룩 순댓국을 먹으며 잘 넘겨야지.

  눈이 오고 있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다. 쌓인 눈들이 아스팔트와 땅 위를 덮는다. 쌓이는 눈처럼 하얗게 하얗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면접, 일 힘든 것들 눈처럼 새로운 것으로 덮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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