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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Jan 20. 2022

열두 살 어르신의 노견 생활

아직 정정하게 잘 살고 계십니다

  우리 강아지는 12년 정도 되었다. 이건 추정나이, 외모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사람들이 가끔 '애기 몇 살이에요'?라고 물을 때마다 열 살이라고 말한 지 이삼 년은 되었으니 그 쯤되었겠지. 지난번에 심장, 피부에 좋다는 비싼 간식을 두어 번 주었더니 크로아틴이란 수치가 높아졌다. 우리 강아지는 심장 비대증 약을 먹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피검사를 한다. 수치 하나가 높아졌다는 말에 비싼 간식을 버리고 원래 주던 사료와 간식을 주기 시작했다. 물론 양도 조금 줄였다. 


  옆집에는 사람으로 치면 다섯 살 정도 되는 매우 활기찬 푸들을 키운다. 매우 활동적이어서 내가 문을 열고 어디를 가면 아우 우우 하며 하울링을 한다. 사람 발자국 소리만 나도 왈왈 짖어대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집 딸기는 잘 듣지를 못한다. 인기척 소리는 물론 내가 다가갔을 때 그 어느 순간 자고 있어도 벌떡 일어나 나를 졸레졸레 따라다니곤 했었는데. 점점 잠을 자는 시간과 빈도가 늘어났고, 예민하고 총명했던 눈빛이 몇 년 전부터 흐리멍덩해져 갔다. 강아지도 나이가 먹어서 칭얼거리고 엄살이 심해지나 보다.

  피검사를 하러 병원에 갈 때면 소리 없이 씩씩하게 받던 녀석이 낑낑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심하면 짖기도 한다. 검사실에 들어간 후, 방금 병원에 온 아주머니가 어디서 고양이가 운다며 기웃거렸다. 딸기가 우는 소리를 고양이 울음소리로 착각한 것이다. 

  또 하루는 내가 조금 늦게 집에 귀가한 적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기척을 못 느꼈는지 아니면 오지 않는 나를 원망하는 것인지 아빠 옆에 앉아서 웅웅 아우 우~ 하고 하울링을 해댔다. 그래도 녀석은 내가 친구를 만나러 외출을 하는지 본인을 산책시키러 가는 건지 내 행동을 보고 짐작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 만날 때는 원피스를 입는 다던가 차려입는 편(화장도 하고 나름 신경 쓰는 것을 안다.) 이럴 때 보면 참 영특하다. 열두 살 어르신은 아직 정정하다. 아직도 자신을 데리고 나가려고 하면 주변을 빙글빙글 돈다던가 산책 가방에 다가가 '나 좀 데려가 주세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흡사 그 눈빛은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하루의 끝에서 잠이 들 때가 되면 한 자리를 차지한다. 사람처럼 세로로 자는 것이 아니라 가로로 누워서. 이 녀석은 나보다 부자인데도 항상 내 옆을 지킨다. 집이랑 소파 다 합쳐서 세 채나 된다. 그 많은 것들을 뒤로하고 내 옆에 엉덩이를 찰싹 붙이고 자는 모습을 보면 늘 한결같아서 좋다. 몇 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그 모습이 나는 너무 좋다. 내가 녀석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눈치백단인 이유도 있지만 언제나 변함없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 하지만 요즘 바람은 마음은 조금은 달라져도 괜찮으니 몸이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늘 관리를 해줘야 되는 모습, 손이 많이 가는 건 상관없으나 예전 생동감 있는 모습이 점점 잦아든 것이 신경이 쓰인다. 그럼에도 항상 내 옆을 지키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은 정정한 노견 생활 중이다. 심장약을 먹으면서 고구마, 배 등 식이섬유와 물이 가득한 음식을 주지 않고, 사람 먹는 것도 지양하고 있다.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 마음 아파도 가려 줘야 하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오래오래 살기 위한 노력이다. 

  퇴사를 하고 나서 녀석과 함께 붙어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저 살만 비비면서 함께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요즘, 지난 수십 년을 돌이켜보면 강아지 때문에 일할 수 있었고, 돈을 벌었고, 녀석의 이야기를 쓰며 브런치 독자들을 많이 얻었다. 그동안 강아지가 나를 기다린 시간이 더 많았다면 지금은 조금 늦게 걷고 인기척이 느려도 내가 먼저 다가가야지. 오늘도 말갛고 투명한 우리 강아지의 눈을 쳐다보며 잘 지내주었다고 말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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