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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Jan 21. 2022

주방식기구에 욕심이 생겼다

누군가가 내 음식을 먹어준다면

  살림이란 다 그런 것인가. 자취를 하는 주변 친구들 열의 아홉은 밥을 잘해 먹지 않는다. 물론 나도 아빠와 둘이 살면서 세 달 동안은 배달음식이나 편의점 도시락을 줄줄 꿰어 골라먹었다. 누구 하나 치워주는 이 없어 너저분했던 부엌이 지난 엄마 기제사 후 깨끗해졌다. 고모들이 요리할 수 있는 면적이 커지도록 부엌 주변을 치워주었다. 티브이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부엌처럼 번듯하진 않지만 요리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넓어진 셈이다. 요새는 레시피도 잘 되어 있어서 재료만 있으면 뚝딱 만드는 건 금방이다.


  요즘 나는 아빠가 먹고 싶다는 음식들을 자주 해주는 편이다. 음식이 완성되기 전 찌개나 국이 보글보글 끓는 것을 인증샷으로 남기기도 한다. 쉬는 동안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나름 백수 루틴을 알차게 보내는 중이다. 아빠는 해산물을 좋아한다. 엄마와 데이트를 할 때에도 먹었던 음식이 해물탕이라지.

  똥손인 나도 주방생활에 입문하며 한 가지씩은 뚝딱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장족의 발전이다. 어떤 날은 된장찌개, 어떤 날은 고등어조림, 최근 만든 것은 황태포와 무를 넣어 뭉근하게 끓인 북엇국이다. 친구들은 '너 해장하려고 만든 것 아니냐'며 놀려대지만 제사에 쓰인 포가 남아 만든 것이다. 내가 제일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은 계란말이와 계란 프라이다. 음식 레시피를 보고 어느 정도 만들 줄 아니, 식기구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계란말이를 할 건데 채소를 다지거나 좀 더 예쁘게 만들고 싶어 계란 말이판을 하나 사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식재료, 양념이 조금 남았을 때 빨리 채워 넣고 싶은 마음, 식기구들을 다 사용하고 제자리에 안 두면 안될 것 같은 것이 그 예다. 


  음식을 만들어 간을 맞추는 일도 계속하다 보니 눈대중이란 게 생겼다. 하지만 눈대중 보다 계량컵이나 스푼에 맞춰서 하는 것이 제일 정확한 맛이 난다. 음식은 정직하니까. 아빠는 내가 그럴듯한 비주얼로 한 번에 음식을 해내는 걸 보면 신기하고 감격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나는 별 대단한 요리도 아닌데 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말을 하면서도 누군가가 내 요리를 맛있게 먹어준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작은 집에서 아빠, 나, 반려견 딸기 세식구 (가족은 별로 없으나) 주방이란 공간이 따뜻한 건 밥 한 끼, 반찬 하나 내가 누군가를 위해 해 줄 수 있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몇 년 후쯤이 될까. 식기로 가득 차 무엇이든 뚝딱뚝딱 만드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그때쯤이면 아빠 말고도 또 다른 가족들이 생길까. 누군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한 끼를 만드는 일은 아빠의 말처럼 위대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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