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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Jan 24. 2022

눈 밟는 소리를 듣다

귀를 기울이면 

  얼마 전 서울 일대부터 강원도까지 폭설이 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주변 친구들의 단톡방은 불이 났다. 이건 눈폭행이다. 운전을 하는 친구들은 앞이 안 보인다며 인증 동영상을 찍어 보냈다. 여기저기서 각종 투정들이 시작 댔다. 카톡창에서도 이를 알려주기라도 하듯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나도 어느 정도 맞장구를 쳐줬지만 '이불 밖은 위험해' 나는 근처 편의점, 커피숍에서 커피를 사서 따뜻한 집에 와 이불을 덮고 있었다. ㄴ눈은 정말 삽시간에 왔다. 함박눈이었다. 딱 봐도 굵직한 눈발이 바람을 타고 내리고 있었다. 그칠 줄 모르는 눈을 볼 때마다 나는 현실적인 생각을 하곤 한다. 달리 말하면 감정이 메마른 것이다. 눈이 오고 나면 살얼음처럼 바닥이 반들반들해지겠는걸부터. 검은 물처럼 질퍽거리면 운동화가 금방 더러워지겠다 라는 생각들이 그것이다. 빨리 눈들이 빨리 녹아 깨끗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속으로 외쳐본다. 


  눈도 오고 면접도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1차 면접도 아니고 2차 면접 후 처우 협의가 잘 안 맞았다. 그리고 대기업 1차 면접 전 전화 인터뷰를 한 날이었다. 피드백이 늦어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형식적으로 본 인터뷰 같아서 마음이 찝찝했다. 그날은 가까이 사는, 직장인 친구를 붙잡고 늘어졌다. 술 한잔 마실까 라는 요량으로. 친구는 오늘 또 술이냐며 근데 안주를 맛있는 것으로 골라 놨으니 먹어준다는 투로 이야기했다. 짠이 시작되자마자 친구는 나를 위로해주기 시작했다. 사실 위로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네 맘을 안다부터, 그래도 넌 잘려본 적 없지 않느냐 라는 말로 위안을 주었다. 나는 그래도 나하나 갈 곳 없겠냐며 지금 이 마음, 이 순간이 불안해서 이러는 것 같다고 답했다.


  순댓국집에는 얼큰하게 취한 아저씨부터 목청이 높은 어르신들이 우리의 목소리를 반은 가로막고 있었다. 우리는 좀 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어쩔 수 없이 눈 쌓인 바닥 위를 걸었다. 친구는 이 소리가 너무 좋다고 말했다. 뽀득뽀득 눈 밟는 소리. 우리 집 주변은 조용하고 인적이 드물어서인지 그 소리가 더 명쾌하고 또렷하게 들린다. 눈 위를 걷는 뽀득 거리는 소리가 귓가로 스며들었다. 조용히 걷는다고 걸었는데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됐다. 눈 밟는 소리에 취하는 건가. 일할 때는 그저 빨리 집에 가야 돼서 비켜가던 곳. 나는 좀 더 쌓여있는 눈 위를 하염없이 걸으며 그 소리를 느꼈다. 나는 좀 더 쌓여있는 눈 위로 올라가 그 소리를 느껴본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 있었다. 그냥 지나쳤던 것들을 유심히 집중해보니 눈 쌓인 소리도 하늘 위 달들이 또렷이 보였다. 곧 밝은 날이 올 거라고 달이 따뜻하게 나를 데워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친구와 나는 아무 말 없이 눈밭 위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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