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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Jan 18. 2022

때론 멍 때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너무 멍을 많이 때려 물건을 잃어버렸다

  멍 때리다 버스에 가방을 놓고 내렸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손에 걸 수 있는 네모난 손가방이었는데 그 안에는 향수, 화장품(쿠션) 등 미용용품들이 들어있었다. 또 얼핏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지만 카드들을 전부 넣어둔 카드지갑이 있었다. 여의도에 있는 병원에 가는 길이라서 광역버스를 탄 채 열심히 카톡을 하고 있었는데, 목적지에 다다르자 나도 모르게 빨리 내려야 된다는 생각에 몸만 내려버렸다. 내린 후 손을 보니 아무것도 없었고 내 머리 위에는 물음표만 가득했다. '여긴 어디 난 누구?'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래서 빈 좌석이 있으면 안 되나 가방을 막 놓게 되니까. 이런저런 상황과 환경을 원망해봤자 버스는 이미 떠났다. 나는 카톡으로 먼발치 지나가는 광역버스의 차 번호를 적어두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뭐?! 스피드! 시간이다. 내 손엔 스마트폰이 있으니 얼른 차고지를 검색했다. 

버스에 물건을 두고 내렸을 때! 

버스에 물건을 두고 내렸을 때 번호 파악이 우선이고, 버스번호가 어디 소속인지를 먼저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OOO여객 이라던지 소속이 중요하니까. 그러고 나서 구글에 1234 버스 차고지 혹은 분실물 등의 키워드를 검색해서 빠르게 전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대를 모른다면 카드사 앱으로 검색이 가능하다. 이비 버스카드의 경우 버스번호까지 나온다. 번호를 모를 경우에는 꼭 참고하길 바라며 적는다. 


  나는 재빠르게 OO운수 관련 회사에 전화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아무렇지 않게 시간대와 차 번호를 아냐고 물었고 무엇을 두고 내렸는지 물었다. 차 번호를 알았으니 기사에게 연락을 줄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한 시간 후에 다시 이 번호로 연락해 달라는 말을 했다. 내게 한 시간 동안은 정말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내 마음이 콩닥콩닥 두 근 반, 세근반 바운스를 타며 움직였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가방을 가져가면 어떻게 하지? 그 안에 정말 카드지갑이 들었으면... 다시 다 발급받아야 되는데, 라는 생각부터 벌어지지도 않은 걱정을 마구 해댔다. 그리고 정확히 1시간 만에 땡땡 운수 차고지에 전화를 해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미색 네모난 가방 맞나요?"

"네" 

나의 네에는 기쁨과 환희에 가득 찬 확신이 담겨있었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다행이다 반, 찾으러 언제 가냐라는 걱정이 함께 섞여 있었다. 맞다. 찾으러 가는 것도 문제였다. 경기 수원시 권선구 저 끝에 있으니까. 우리 집에서도 끝쪽에 위치하고 있다. 머리로 계산을 해봤다. 그래도 참 다행이었다. 정말 차고지가 수원역에서 가까운 듯 멀었지만 (차비를 아낀다고 1Km)가 넘는 거리를 걸어갔다 왔다. 조금 외지고, 삥삥 돌아가야 되지만 가방을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걸어갔다지. 재개발에 공사하는 곳이 주변 곳곳에 있었는데 추운 날씨였지만 산책했다고 생각하고 걷고 또 걸었다. 다시는 멍 때리지 말자 라는 다짐과 함께. 

  자다가 버스 차고지까지 간 적은 있는데 물건을 바로 옆에 두고, 내린 적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가방 안 내용물들을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다는 것. 때론 창 밖을 보며 멍 때리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이런 멍은 넣어둬야겠다. 그리고 물건을 잃어버려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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