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살을 빼야 한다
퇴사를 한 직후부터였을까. 아니 그 전부터였나. 회사에 재직중일 때도 재택근무가 끝나면 맥주를 한 캔씩 따 마셨었다. 그런데 그 횟수가 점점 늘어나더니 매일 무언가를 들이켜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하지만 어딜 가나 이유는 있었다. 면접 최종에서 떨어져서, 우울해서, 단순히 취하고 싶어서 등등의 단순한 이유들.
그러다 보니 일찍 맥주를 마시고 자도 다음날 나도 모르게 몸이 무겁거나 찌뿌둥해져 있었다. 점점, 불어난 체중을 나도 모른 채로. 사실 무서워서 체중계 위에 오르지 못했다. 혹시나 내가 생각한 킬로그램 그 이상이 된다면 나 스스로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사실 두려웠다. 그러나 맥주를 매일 같이 마시는데 살이 안 찔 수는 없었다.
어느날 처럼 샤워를 하고 매일 근 두 달 동안 술을 마셨는데 얼마나 쪘나 궁금했다. 그래서 체중계 위에 올라섰다. 그런데 뚜둥, 다시 고무줄처럼 체중이 늘어나 있었다.
나는 보통 생각 없이 많이 먹으면 최대치의 몸무게를 찍는 편이다. 그런데 그 무게를 찍으면 무조건 다이어트에 들어간다. 그런데 인생 최대 몸무게라니. 어쩐지 내게 팩폭을 날리며 조언을 해주는 지인들이 한 마디씩 거든다. '부었다' '술 살은 빼기 어렵다' '그거 이제 배로 간다' '심술보살처럼 얼굴에 달라붙는다'라며 그만 마시라 조언을 받았었다. 그런데도 왜 타격은 일도 없는 것인지. 먹은 게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이 술 때문이라면 더더욱 운동을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리로는 받아들여지는데 실천이 잘 안 됐다.
술도 습관이듯 운동도 결국 습관이야. 이 말이 맞았다. 술 그냥 심심해서 먹는 것 아니냐. 별의별 타박과 말을 듣고 주변 잔소리를 견뎌냈다. 정확히는 타격이 없었다. 나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시간에 구속받지도 술 량을 자제시켜주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이전에 몸무게가 지금과 같은 시절이 한번 있었다. 때는 몇 년 전 외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많이 정정하셨을 때였지. 그때는 뭘 해도 예쁘다 말랐다 밥 좀 더 먹어야겠다며 뭐든 내게 주고 싶었던 할머니였다. 그런 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살 좀 빼야겠다고' 그때가 지금 이 몸무게였으니까. 나는 무언의 압박도, 잔소리도 아닌 그 한마디에 충격을 받았다. 할머니의 살쪘다는 한마디는 남자 친구, 친한 지인들이 살 빼라고 나를 압박하는 것보다 더 크게 와닿았으니까. 당시 나는 그 충격에 매일 운동을 했었다.
내가 왜 술을 마시나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건 자기합리화일수도 있지만 사람이 그리워서 술을 마시나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마시면 더 좋지만 정신이 알딸딸해서 나 혼자 잘 수도 있고 하니. 이 녀석이 들어가면 조금은 잡생각 같은 게 덜 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얻은 게 지방덩어리다. 하지만 어쩌겠나. 약을 한 번에 끊을 수 없듯이 술도 조금씩 끊을 것이다. 하루 네 캔이었다면 한 캔만 스텝퍼나 훌라후프도 하면서, 이제 잔소리받을 사람이 없으니. 내가 내게 잔소리를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