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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Feb 10. 2022

누구에게나 몫이 있다

할 수 있는 내 몫을 찾는다는 건 

  아침 워밍업으로 브런치를 쓴 지 한 달 정도 되어 간다. 회사 생활을 하며 병행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아침마다 쪽글을 써 업로드를 한다는 건 아주 작은 일과에 불과하지만 내게 아침 일상으로는 매우 큰 일이다. 나중에 내가 기록해둔 글의 목록을 볼 때 기쁜 일, 슬픈 일, 그저 그런 일 등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를 상기하게 된다. '백수여도 괜찮아' '오늘 내가 보기엔 괜찮지 않은 백수 같아' 매일매일 상태를 체크하면서 내 생각을 글로 쓴다는 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내 '일'이자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TV를 돌리다 뭘 하든 외롭다는 그녀의 말에 리모컨을 멈췄다. 큰 정원에 대리석과 샹들리에, 마음껏 백화점에서 명품을 살 수 있고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연기자 A 씨는 늘 외롭다고 했다.  벽보고 이야기하는 느낌이 든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한 번도 부자로 살아 본 적이 없어서 친구들끼리는 정말 부자 남편 만나서 살아보면 어떤 기분일까라고 농담처럼 던지기도 한 날들이 있었다. 그녀가 외로운 이유가 무엇일까를 따라가 보면 그녀가 평소 하는 것들에게서 해답이 나왔다. 아무것도 안 하고 남편만 기다리는 생활, 주체적으로 하지 못한 채 그저 타국에서 집을 그리워하는 마음처럼, 그녀는 외로움과 늘 마주하고 있었다. 

  외로움, 남들이 힘내라, 정신을 바로잡아야 한다, 우울할 시간은 있느냐 라는 말을 아무리 해도 외로움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철저히 나 스스로가 외로움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쓰고, 술을 마시는 것도 외로움이라는 테두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함일 것이다. 과연 외로움은 어떻게 상쇄시켜야 하는 것인가 생각하는 찰나, 유튜브에서 마음이 뭉클해지는 댓글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몫이 주어진 무언가를 하는 것, 몸이 안 좋은 할머니가 오이를 사다가 오이소박이를 담으실 때, 자식들을 위해 한통 한통 담는 표정, 그게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내게 영감을 주는 댓글에는 사람이 몫이 있어야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살아갈 동력을 얻는다고 댓글러가 말했다. 꼭 억만장자가 되어야 마음이 풍족한 것은 아니듯이. 하물며 매일 아침 화분에 물을 주어 꽃이 피는 걸 보며 뿌듯하는 느끼는 것도 그 사람의 몫이 되는 것이다. 


  이런 글을 보자 나는 우리 아빠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철도박물관 봉사, 숲 해설사를 하면서 일지를 쓰고 한 달 이십만 원을 받는 아빠를 보며 나는 '이제 그런 거 안 해도 돼, 쉬어도 되는 나이야'라고 핀잔을 줬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아빠는 이게 편하더라, 그리고 20만 원 받으면 전기값이라도 벌 수 있어서 뿌듯해'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깟 이십만 원이 뭐라고 조금이라도 아빠가 쉬었으면 좋겠는데, 사실 아빠에게 가만히 있는 것은 더 큰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아빠도 아빠에게 필요한 몫이 필요했던 것.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지금 이렇게 브런치에 내가 느낀 감정들을 펼쳐놓고, 타인의 글을 보며 공감하는 것 또한 소중하다. 그러기에 나는 지금의 삶에 또 다른 몫을 찾을 것이다. 행복의 이유를 찾아가는 것이 어쩌면 삶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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