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기침을 하던 어느 오후
환절기라 그런 것인가. 나는 몇 년 동안 심한 감기 걸린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는 면역체계가 약해서, 야근이 많은 날에는 피로 때문에 목이 아프거나 열이 나는 증상이 줄곧 있었다. 과로하면 회사 근처에서 링거를 맞곤 했었지. 전후 증상이 또렷하게 있지도 않았고, 날이 풀린다고 해서 얇게 입고 나가긴 했지만 옷차림의 변화는 크지 않았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아는 동생과 소주에 나베를 먹은 날 다음날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콧물도 나오고 노란 가래도 나오는데 자꾸 목에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혼자서 '목감기'라고 병명을 판단 지었다. 평소에도 어떤 병 같으면 이건 아닐까, 저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소위 말하는 건강염려증이 있는데 이번엔 확실했다. 약국에 가서 어제부터 그랬는데 목감기 증상 같아요 라는 말과 함께 약을 이만 원어치나 샀다. 목에 좋다는 스프레이, 종합감기약(갈근탕), 염증 소염제(콧물, 인후통) 사고 나니 한보따리 되는 듯한 양. 약을 꼬박꼬박 먹고 목에 스프레이도 뿌리니 칼칼했던 증상이 조금은 잦아드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문제가 생겼다. 계속 목에 뭐가 차는 느낌 (답답한 느낌이 들더니) 잠에서 세네 번은 깬 것 같았다. 가글도 하고, 물도 먹고 그러다 목을 가다듬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링거까지는 아니라도 제대로 된 진료라도 받자, 엉덩이 주사를 맞자라는 요량으로 동네 이비인후과로 향했다.
면역기관이 약해 일곱 살 때부터 다녔던 이비인후과에 앉아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했다.
"혀를 쭉 내밀어보세요"
워낙 베테랑 선생님이시기에 대충 보더니 이거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부은 거란다. 목감기가 아니라 '역류성 식도염'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럼 왜 가래가 목 끝에 붙은 느낌이 났을까. 머리가 띵한 건 마른기침을 하다 보니 머리가 울리기도 해서 그런 느낌이 들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지난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도 역류성 식도염 증상 이야기를 들었었다. 역류성 식도염은 약은 빨리 들지만 계속 먹어야 되기 때문에, 습관이 중요하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역류성 식도염 인지도 모르고 며칠 동안 술을 먹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게는 안 좋은 버릇이 있다. 술을 마시면 받지 않을 때 다 쏟아내는 것, 말하자면 토를 하는 것이다. 먹토까지는 아니지만 술이 안 받는데 그 사람과 술을 마시는 게 좋아한 잔 두 잔 먹다가 화장실에서 게워낸다. 생각해보니 양 이틀 술을 마시고 화장실에서 토를 한 기억이 났다. 나는 무릎을 탁 치며 '아 그래서 많이 부어 있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해됐다.
목감기, 종합감기약을 한 트럭 먹어도 안 나았는데 병원 한번 갔다 오니 부은 목이 가라앉았다. 얼른 아침을 챙겨 먹고 아침 약을 한 봉지 입에 털어 넣었다. 이상하게 목이 점점 괜찮아지고 있다. 처음부터 목감기라고 판단하고 엉뚱한 약들을 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류성 식도염이 괜찮아 지기 위해 평소 생활습관을 조금씩 바꾸려고 한다. 첫 번째는 카페인 조금씩 줄이기, 술 줄이기, 먹고 30분 -1시간 이상은 앉아 있다가 눕기, 역류성 식도염이 심해지면 목이 부어서 너무 아프고, 목구멍이 사라져 가는 느낌이 든다. 현대인의 팔십 퍼센트는 가지고 있다고 해도 심해지면 생활에 불편함을 주니 평소에 사소한 습관부터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봉지 가득 산 약을 한쪽 구석에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