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무쳐본 적은 처음이라
'아빠 내일은 콩나물 무침이랑 시금치 무쳐줄게'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화근이었다. 이젠 진짜 집에서 밥을 해 먹어야지라는 생각으로 밑반찬을 해보려고 했다. 아빠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콩나물과 시금치 등 갖가지 먹을거리 장을 봐 가져왔다. 둘이 사는데 소량만 하면 되는데 시금치며 콩나물이며 너무 푸짐하게 사 온 거 아닌가. 양이 어느 정도인지를 봤더니 한 봉지에 600g짜리를 두 봉지나 사 왔다. 내가 해준 집밥이 먹고 싶었던 것인지 반찬을 만든다고 해서 내심 기대했던 것인지 모른다.
요 근래 역류성 식도염에 비염까지 있어 잠이 많아지고 몸이 무거워졌다. 반찬 만들기를 다음에 해야지 하고 미루다 가는 콩나물을 계속 못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콩나물을 무칠요량으로 열심히 요리에 집중했다. 평생 무침요리는 엄마가 해주는 것을 먹기만 해 봤지 거의 처음이다. 요리하는 것도 만들어 먹는 것도 삼십 대가 되고 나서야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콩나물을 다듬어 식초를 탄 물에 여러 번 헹구었다. 그리고 냄비 가득 물을 넣고 소금 한 숟가락 정도를 넣어 이삼 분 끓였다. 다 데친 콩나물을 차가운 물이나 뜰채에 건져 한번 더 씻어주고 열심히 레시피에 나와있는 양념들을 곁들였다. 국간장, 참기름, 기호에 따라서 고춧가루, 다진 마늘 등을 넣어주고 잘 문질러주면 백 퍼센트는 아니지만 그럴듯한 콩나물 무침이 완성된다. 파도 넣고 싶었는데 집에 파가 없어서 콩나물만 가지고 무쳤다. 간이 세면 안 좋아서 아빠 반찬통에는 간장으로만 무친 콩나물을 따로 했다. 콩나물 무침, 콩나물 국, 콩나물밥 콩나물로는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시금치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하게 요즘에는 요리를 할 때마다 예전에 엄마가 해줬던 음식과 비교하게 된다. 우리 엄마는 요리를 엄청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간을 심심하게 해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웬만하면 간을 적게 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잘 되지 않는 탓이기도 하다. 요리는 할수록 늘어간다고 200g씩 각각 양념을 달리해서 무쳤는데 처음 반찬 한통을 할 때는 소심하게 양념을 넣었었다. 그러다가 600g을 대량으로 하게 되니까 눈대중으로 빨리빨리 넣고 비주얼만 봐도 이 정도면 되겠다 싶었다. 역시 인간은 학습의 동물이다.
나는 어릴 적 콩나물을 무척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하지만. 엄마가 회사 가기 전에 끓여 놓는 것 중 대량으로 해 놓았던 국 TOP3에는 늘 콩나물 국이 있었다. 시간을 되돌려 지금 그 맛을 먹어보고 싶지만 다시 내가 만들어 찾는 방법밖에는 없다. 어쩌면 내가 요리하는 이유는 엄마의 시간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엄마의 방식대로는 아니지만 그 모습과 맛을 머릿속에서 되감기하며 요리할 때만큼은 진지하다. 오늘은 누군가가 해준 것이 아닌 내가 만든 콩나물 무침에 밥을 비벼 팍팍 먹어본다. 내가 만든 음식에 내가 온기를 넣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