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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Mar 30. 2022

아빠는 엄마를 생각하며
가드닝을 한다

키운다는 것의 소중함

  우리 집에는 사계절 내내 식물이 산다. 어릴 때는 그 종류와 수가 더 많았는데……. 이사를 오고부터는 그 수가 줄었다. 아빠가 퇴직을 하고나서부터. 그러니까 예순 살이 넘고 나서부터인가 이상하리만치 무언가를 기르는데 더 열중이다. 아빠는 소박하고 욕심 없는 삶, 너무 없지도 그렇다고 넘치지도 않는 삶을 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엄마가 그랬던 것과 같이. 

  내 방에는 항상 공기를 정화시키는 '정화식물'이 있어야 한다며 입버릇처럼 말하는 아빠. 아빠는 내가 커피를 다 마시고 남긴 플라스틱 컵 용기에 물을 떠다 놓거나 분갈이식의 화분을 만들어 매일 컴퓨터 옆에 갖다 놓는다. 어릴 때, 나는 군자란이며 알로에며 각종 화초 들을 두 눈으로 보고 자랐다.

 식물 키우는 것을 좋아했던 엄마는 회사 업무가 아닌 날, 그러니까 주말마다 콧노래를 부르며 베란다에 있는 화분 하나하나에게 뭐라 이야기를 하며 물을 주었다. 어릴 때 나와는 놀아주지 않고 몇 시간 동안 화분관리를 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화분들을 질투한 적도 있었다. 

  "엄마는 화분 요정이야? 하루 종일 화분만 돌보게" 

  내 귀여운 질투에 엄마는 손짓을 하며 꽃 핀 군자란을 손으로 가리켰다. 

  군자란은 나 좀 한번 봐줘라며 제 속살을 보여주듯 봉오리를 활짝 피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눈 녹듯이 사르르 풀렸다. 


  아빠는 유기농업 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노년이 되면 아빠가 태어난 시골로 다시 돌아가서 자그마 낳게 땅을 얻어 농장이나 텃밭 같은 것을 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몇몇 식물들도 함께 하늘나라로 간 적이 있었다. 집안에 신경 쓸 이가 없어서 한동안은 말라비틀어지고,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그러나 차츰 그것들이 제자리를 찾으며 우리 집안의 공기는 다시 푸르게 푸르게 돋아 나고 있었다. 가끔은 식물들이 무어라고 저렇게 열심히 공을 들이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빠는 집안 식물 가드닝을 하며 엄마를 떠올리는 게 아닐까. 엄마의 분신 같았던 유일한 취미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 집에는 유난히 관심 가는 화분 하나가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게 뭔지 이름도 몰랐다. 가끔 엄마가 키우던 화분의 이름들을 나도 아빠도 모를 때가 많다. 내가 그 식물에 눈이 갔던 것은 이상하리만치 쭉쭉 잎이 돋고 색깔이 싱그러워서다. 나중에야 이름을 알게 돼 그 이름을 아빠가 화분 밑에 네임펜으로 적어놨다. 까먹지 않기 위해서. '크루시아' 물을 많이 주면 뿌리가 썩을 수 있기 때문에 겉흙이 말랐을 때 흠뻑 물을 줘야 한단다. 가지치기와 물꽃이 모두 가능하고 키우기도 쉬운 녀석이란다. 나는 궁금한 마음에 녀석의 꽃말을 찾아봤다. 검색창에 '크루시아'라고 적으니 크기부터 키우는 법 특징까지 빼곡하게 녀석의 프로필이 줄줄이 나왔다. 녀석의 꽃말은 '변함없는 사랑'이었다. 


  꽃말을 듣고 괜히 울컥해지는 것은 왜일까. 엄마가 키우던 화분은 어쩌면 오랫동안 엄마의 변함없는 사랑이 아닐까. 엄마가 내어주던 자신만의 시간, 엄마만의 공간, 엄마는 자신만의 정원 만들기를 꿈꿨으리라. 그 소중한 시간들이 잎새 곳곳에 묻어 있는 것 같아 나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얼마 전 아빠는 오만 원이라는 임대료를 내고 감자를 심을 수 있는 일일 농장을 샀다. 아침 일찍 내게 쪽지 한 장을 남기고 오늘도 감자씨앗을 뿌리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아빠 나이도 나이인데 일 좀 벌리지 말고 쉬면서 살라며 잔소리를 잔뜩 해댔던 얼마 전이 떠올랐다. 괜히 미안해졌다. 엄마도 엄마의 공간인 정원을 꿈꿨듯이 아빠도 아빠의 공간을 키우고 관리하고, 또 엄마를 추억하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남은 인생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으려는 생각도 있겠지. 

  그 공간을 이제는 존중해 주려고 한다. 빨리 시간이 흘렀으면 좋겠다. 튼실한 감자들이 무럭무럭 자랐으면 좋겠다. 흙 위에 햇살과 비, 바람이 채워지고 또 다른 흙이 채워지듯이 모든 아픔도 사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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