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로써 딸로서, 선택엔 정답이 없다
얼마 전 인간극장에서 방영했던 ‘엄마’를 봤다. 다섯 아이의 싱글맘. 국밥집을 하며 삶의 무게를 꿋꿋이 버텨내던 모습이 화면 속에 있었다. 나는 주로 아이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는 편이다. 기쁨, 슬픔 그 어느 상황에도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맑아진다.
민숙 씨는 싱글맘에 전 남편의 조카 두 명을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소송을 통해 정식 입양을 한 것 같다. 인상 깊었던 장면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궁암으로 항암치료를 미루면서까지 식당일을 한다. 가게를 닫으면 뭘 먹고 사냐면서. 이천십삼 년에 방영됐으니 십이 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그러다 유튜브 댓글로 근황을 봤는데 방송 후 일 년이 지난 시점 별이 되셨단다.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억지로 만든 용기가 아니라 매일 살림하듯 손에 익은 표정 같았다.
매일 식당에 가 일주일 치 반찬을 만들고, 큰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다정한 엄마의 모습. 처음에는 그녀를 보며 엄마가 생각났지만 울음을 참았다. 그다음에 봤을 때는 울컥해 펑펑 울었다.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눈물을 쏟았다. 참 미련하다. 착하다. 하늘은 왜 착한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빨리 데려갈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친구와 함께 인간극장을 보며 긴 토론이 시작됐다.
“항암은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시기가 중요하잖아. 너무 안타까워서 그래”
“다섯 아이를 먹이고 재우는 일이 먼저였을 수도 있어.
당장의 생계, 병원비, 그 앞에서 선택이 단순하지는 않았을 거야”
살아야 한다와 지켜야 한다는 말은 마치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 같으면서도 어느 지점에선 겹쳐 보였다. 치료를 ‘지키는’ 일도 삶을 ‘살아내는’ 일의 일부이고, 생계를 ‘지키는’ 선택 또한 살아남기위한 몸부림이다.
나는 그저 한 사람의 삶이 아깝고 아쉬워서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친구는 항암을 미루는 상황이 이해가 된단다. 어쩔 수 없지 않았냐고. 자기가 어떻게 되던지 나중에 아이들 먹고 살 뭔가를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말이 가슴을 울렸다.
아이들 보험비는 내면서 본인 암보험 하나 없는 것도 마음 아팠다. 그래 오죽했으면 항암을 미뤘을까. 친구와 나 시선은 달랐지만 바라보는 마음은 같았다.
민숙 씨의 이야기는 단순한 안타까움이 아니라 이해로 다가왔다. 같은 환자로서 같은 딸로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 당시의 선택을 지금에 와서 바꿀 수 없지만 이해하고 보니 알 것 같았다. 엄마를 생각해 본다. 엄마는 사는 게 바빠서 우울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아빠는 암이 3기까지 번졌을 때까지 모르고 살았던 엄마에게 미련하다고 말했다.
나는 오죽했으면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내가 아는 엄마는 어떤 어려움이 와도 긍정적으로 극복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암 환자의 가족이자 보호자였을 때도 심각성을 몰랐다.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랬으면 하는 내 희망 사항이었다. 엄마처럼 내가 암에 걸려보니 하나도 긍정적으로 생각되지 않더라.
엄마의 마지막 겨울을 생각한다. 엄마는 이미 자신의 하루를 계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에 계산 속에는 아빠와 나 할머니 강아지 그리고 집에 대한 걱정이 있었겠지.
친구와 나의 대화를 다시 떠올렸다. 우리는 서로 다른 말을 했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 무게 앞에서 어떤 선택도 가벼이 말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