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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멀리 가는 길이 아니라 나로 돌아오는 길이다

바다가 묻는 질문, 여행이 주는 답

by 최물결

사람들은 왜 바다 앞에 서면 멍하니 쳐다볼까. 아마 일렁이는 바다를 보며 말을 잃었겠지.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마주하면, 내 안에 가장 작은 질문들까지도 잠잠해진다. 그 순간은 형용할 수 없는 평화와 동시에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채워진다.
사람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짐을 꾸려 휴가를 가는 이유도 그럴 테지.

얼마 전 강아지와 강원도 속초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여행지를 선택할 때 주변에 바다가 있는지를 확인한다. 내 사주에 물이 부족해서 그런가. 흐르는 강이나 호수, 바닷가를 보면 괜히 마음이 잔잔해진다. 여행도 그렇다. 삶에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지만 기꺼이 한 번쯤 시간을 내 길을 떠난다. 낯선 곳에서 마주하는 풍경 속 어디쯤 잃어버린 나의 조각들을 발견하기 때문일 터.


갱얼쥐.jpg 견생처음 해변 밟은 강아지다


매년 가는 강원도지만 계절도 풍경도 함께하는 이도 달랐다. 익숙하지만 생경한 느낌이 공존하는 여행. 이번에는 반려견 자두와 함께 가서 특별했다. 마음을 리프레시하기 위해 간 여행이었다. 나는 여행을 가기 전 특별히 코스를 짜지 않는다. 여행 당일 아침 아홉 시에 떠났는데 일곱 시간이 걸렸다. 같은 땅덩어리인데 이동하는 차가 이렇게나 많은지 처음 알았다. 늦은 오후에 도착해서 몸이 고단해 한두 시간 쉬었는데 저녁이 됐다.

속초 중앙시장에 먹을 걸 사러 갔다. 중간에 인생 네 컷에서 사진도 찍고 시장에서 배추전, 메밀전병, 닭똥집, 술빵 등 먹을 걸 한가득 샀다. 속초 시장에서 먹을거리들을 빠르게 사고 나오고 싶었는데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한여름 사람들의 숨결로 가득한 시장. 장을 보고 오니 두 시간이 넘어가 있었는데 티셔츠가 땀범벅이 됐다. 첫째 날 일정이 너무 후다닥 지나갔다. 둘째 날은 꼭 바다를 보겠다 생각했다.


속초해수욕장. 바다에 도착했다. 탁 트인 시야 너머로 펼쳐진 푸름. 파도가 같은 듯 다른 리듬으로 밀려온다. 불안했던 마음을 달래주듯 평화가 찾아왔다.


반려견 자두가 낯설어하며 나를 따라왔다. 강아지와 바다 근처를 온 적은 있었지만 모래사장을 밟게 한 건 처음이다. 녀석이 갑자기 아기 맹수처럼 백사장을 방방 뛰어다닌다. 부드러운 모래의 감촉이 좋은 걸까. 우리는 바닷가 바로 앞까지 걸었다. 강아지와 함께 뛰는 내 모습은 조금 우스웠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 됐다. 흰모래 위에 남겨진 작은 발자국이 마치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는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파도에 발자국이 사라지기 전 사진에 담는다.


강원.jpg 직접 찍은 하늘과 바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 이런 순간을 만나기 위함이 아닐까. 그동안 잊고 살았던 기쁨과 자유를 낯선 풍경 속에서 만나듯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안의 불이 환하게 켜졌다. 바다는 우리에게 위로와 자유를 건넨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다그치지 않고, 마음의 속도를 천천히 맞출 수 있다. 때로는 치유, 때로는 해방이 파도 소리에 섞여 귓가에 넘실거린다. 잊고 살던 삶의 리듬이 떠올랐다. 엄마의 말투로 바다가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다. 엄마는 늘 덤벙대는 내게 천천히 하라고 말했다. 마음속에 오백 원 동전만큼의 스크래치가 났다면 그 자국을 바다가 다 쓸어가고 있었다.


‘조급하지 않아도 된다. 파도가 오면 맞고, 가면 기다리면 된다’


바다가 내게 살아가는 길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행을 다녀온 뒤 자꾸 바다 생각이 났다. 탁 트인 넓은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바다 앞에 서면 진정 살아있는 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모래사장 위 자두의 발자국처럼, 우리의 삶도 파도에 지워지겠지만. 그 순간이 남기는 울림은 오래도록 마음에 기록된다.

올해 가을에 또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

자두와 함께 하는 다음 계절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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