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함께 웃는 동료였다
삼주 전 이전 회사 동료들과 만났다. 원래는 셋이서 만나려 했는데 두 명을 더 소환해 총 다섯 명이 됐다.
저녁 약속을 잡는 건 오랜만이었다. 회사를 쉰 지 이년 정도 됐으니 해가 두 번이나 바뀌었다. 아픈 이후 병을 숨기거나 감출 필요가 없었다. 나는 당시 자연스럽게 전 직장 사람들에게 암에 걸린 사실을 오픈했었다.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인데. 혹여나 내가 불편하지는 않을까.
다른 사람들이 묻는 당연한 질문들(어떻게 알았냐, 수술 횟수, 치료 과정)에 답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그들의 눈빛 속에서 내가 아픈 사람으로 비칠까 하는 불안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똑같이 시답자는 농담을 하고 장난을 쳤다.
직장 동료들에게 장난을 친다는 건 좀 웃기고 유치하지만 사람들에게 비치는 모습은 꽤나 유쾌한 사람이었다. 농담과 장난 스몰토크도 모두 나이기에 가능하다며 웃음을 지었다. 하필이면 이전 회사에서 제품 홍보 알림이 와서 한마디 던졌다. “이거 우리 약속 알고 노리고 보낸 걸 거예요” 전 직장동료들과 내가 까르르 웃었다.
특별할 것도 조심스러운 위로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무알코올 맥주를 시키고, 맥주가 부족하면 맞은편에서 한잔 더? 제스처와 함께 술을 시켰다. 몇 년이 지나도 맺힌 게 많은 우리는 시원하게 전 회사를 깠다. 그리고 현재 근황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모여 앉아 보니 회사 침구 직책도 모두 달랐다. 그런 사람들에게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흥미로웠다. 이 년 동안 두 번을 넘게 이직한 동료 마케터도 있었다. 회사와 맡았던 직무에 대해 이야기하며 칼 이직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별것도 아닌 거에 웃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즐겁다. 직장 생활을 하며 가끔씩 크게 상처받는 일이 있었는데 내 이야기를 다 들어줬던 사람들이다. 나는 이날 영풍문고에 들러 키링을 다섯 개 샀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냥 만난 기념으로 뭐라도 주고 싶어서다.
약속에 온 순서대로 키링을 뒤집었다. 운명에 맡기라는 말과 함께 선택하라고 말했다. 잔을 부딪히며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오갈 때마다 크게 웃었다. 소개팅에 실패한 이야기, 회사 사람들의 근황,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 대화 주제가 빠르게 바뀔 때마다 잔을 부딪힌다. 편한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대화의 꼬리의 꼬리를 물며 길어진다. 우리는 술집 문이 닫을 때까지 늦은 대화를 이어갔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초코파이 광고 시엠송이 떠올랐다.
초코파이 하면 정이라는 한자어가 떠오르지 않는가. 정도로 친구, 가족, 연인 간의 오래된 마음을 모토로 사람들의 인상에 강하게 남았다. 회사 동료들의 마음이 꼭 이 초코파이 정 같았다.
아주 평범한 안부와 이야기 속 예전과 다름없는 동료로서 불리는 순간. 병을 굳이 대화의 중심에 두지 않는 그들의 태도가 오히려 내게는 배려로 다가왔다. 새 프로젝트, 연애담, 결혼생활, 맛집 얘기를 꺼냈다. 나는 가끔 웃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에 섞여 들었다. 특별한 위로도 동정도 없는 그 순간 나는 다시금 동료라는 자리로 돌아왔음을 확신했다.
사람들과 엠비티아이 이야기를 하며 동료 한 명이 내게 말했다. 유료엠비티아이를 추천하며 뭐가 됐든 나는 나라는 사람 그 자체라고.
그냥 나는 나대로의 사람이란 걸 깨달은 순간 나를 좀 더 들여다보게 됐다. 더 이상 아프고 모난 나는 내가 아니란 사실을. 같은 호흡으로 언제나처럼 웃긴 농담을 하는 유쾌한 나라고. 병을 겪은 뒤 관계가 달라질 줄 알았지만 사람들은 그대로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평범한 일상의 대화가 마음에 확신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