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속에서 찾은 나 – 내가 절을 좋아하는 이유
일 년에 서 너 차례 절에 방문한다. 서울, 경기, 부산, 강원도 머릿속에 유명한 사찰을 꿰고 있을 정도다. 작년에는 더 많이 간 것 같다. 처음 절에 발을 디디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어느 절이든 입구에 도착하면 주변을 둘러본다. 조용하고 적막하다. 발길이 닿는 대로 가면 된다. 오가는 사람을 따로 체크하지도 강요하지도 않는다. 형식, 규율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편안함이 묻어있다. 그래서 절을 종교적으로 믿는다기보단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절 중 하나는 봉선사다. 마음이 이끌 때마다 한 번씩 찾는 곳이다. 처음 유방 조직 검사를 받을 때, 암 판정을 받았을 때, 치료 중에, 후에 모두 들렀었다. 초여름이면 연꽃 봉우리가 피어나고 가을이면 강가에 새들을 볼 수 있는 곳. 한결같지만 조금은 다른 사찰이다. 보살님이 키우는 고양이들도 있다. 아가 고양이들의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무엇보다 봉선사는 주차장과 가깝고 오르막길이 없다. 그러니까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면 절이 아닌 힐링파크에 온 것만 같다.
일주문과 사찰 사이에 연못이 있다. 저번에 연못을 보다가 엄청 큰 새를 봤다. 사람들 모두 근처까지 갔는데 ‘왜가리’라고 불리는 녀석은 꿈쩍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웃음이 흘러나와 당장 휴대폰을 켜고 사진을 찍었다. 뿐만 아니라 봉선사에는 오 백 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오랜 역사를 품은 나무에 조용히 인사를 했다.
나는 절에 갈 때면 소원 촛불을 켠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기도를 한다. 예전에는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이의 시선이 싫어서 못했다. 그러나 신경을 안 쓴 지 오래다. 기도 내용은 매번 같다. 나를 비롯한 내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 그거면 됐다. 아픔을 겪었으니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한 번 더 말하기도 한다. 길을 걷다 보면 모르는 사람들을 마주친다. 저들은 어떤 소원을 품고 왔을까?
저 멀리 템플스테이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절복을 갈아입고 삼삼오오 모여 어딘가로 가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그저 가고 오는 사람들, 흘러가는 풍경을 멍하게 보면 시간이 간다.
절에 앉아 있으면 마음속 시계추가 멈춘 듯하다. 도시의 시간은 늘 바쁘게 흐르고 시간에 나를 욱여넣는다. 절의 시간은 느릿하고 단단하다. 바람이 대웅전 기둥을 스치고 그 길을 따라 나의 숨결이 천천히 길어진다. 눈을 감고 가만히 호흡을 느낀다.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속 깊은 곳이 고요해진다. 누군가는 명상이라 할 테지만 내게는 나를 다시 만나는 순간이다.
절은 나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그저 묵묵히 기다릴 뿐이다. 답을 강요하지 않고, 내 안의 목소리를 기다려준다. 침묵 속에 내 마음이 담금질된다. 해아 할 일보다 살아있는 지금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래서인가 보다. 절에서 나오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다.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빈손으로 산길을 내려오는 사람처럼.
절을 나설 때 나는 좀 더 비워진 사람이 된다. 마음속 빈자리 한 켠 바람과 햇살이 스며드는 창이 되어, 다시 살아갈 힘이 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