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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지만 아직도 무섭다

나는 3개월에 한번씩 정기 검진을 한다

by 최물결

간 밤 꿈을 꿨다. 꿈에서 엄마를 만났다. 정확히는 본 것이다. 엄마가 보고 싶어 휴대폰으로 연락을 했는데 묵묵부답이었다. 울부짖으며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끝까지 나를 만나 주지 않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얼마나 만나고 싶었으면 부엌에 가 칼을 꺼내 들어 영상을 찍었다. 나는 엄마에게 포효하며 말했다.


안 만나면 죽어버릴 거라고. 엄마는 의도적으로 나를 피했다. 왜 그랬을까. 눈을 뜨며 엄마가 현실에 없다는 걸 깨닫는다. 내게 불안은 무의식의 영역일까. 마음 어딘가에 아직도 두려움과 상실감이 남아있는걸 까.


표준치료가 끝나고 6개월마다 검사를 하러 병원에 간다. 초반에는 씨티, 엠알아이, 피검사 등 해야 할 항목을 꼼꼼히 넣어주셨다. 결과는 정상. 이상소견이 없으니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끔 비 오기 전이나 날씨가 급격하게 변할 때 가슴이 아프다. 바늘로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 혹은 미세 전기가 왔다가는 감각이다. 진료 교수님은 그럴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통증이 잦아들었다 다시 생길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유방 수술을 두 번한 이상 평생 가져가야 할 수도 있단다. 육 개월 검진 일 년 검진을 무사통과했지만 무서웠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스타일인데 엠알아이 씨티 속 내용을 열심히 해석했다. 씨티에서 폐에 미세결절이 있고, 관절염이 있다고 나와있었다. 미세 결절? 이것도 다른 과에 가서 검사해 봐야 되는 거 아냐? 병명이 생기면 ‘양성인지 음성인지 정밀검사가 필요한가’ 떠올렸다.


이번에도 괜찮다며 넘어가는 선생님을 붙잡고 물었다. 폐에 뭐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선생님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이상이 있었으면 얘기했을 거예요” 추적 검사로부터 일 년, 애매했던 증상을 떠올렸다.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병을 발견할 수 없다는 생각이 깊게 박혔던 나는 어느 누구도 믿지 않았다. 선생님이 수술 부위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정말 괜찮을까 걱정됐다. 한 번 더 확인받고 싶은 마음, 조금이라도 안심하고 싶었다.




유방암 환자들이 자주 가는 로컬 병원을 예약했다. 기존 병원 자료를 가져갔지만 한 번 더 유방촬영을 했다. 스스로가 과잉진료를 하고 있다. 선생님이 내가 겪은 시간에 대해 깊이 공감해 주셨다. 오랫동안 애매했던 시간들, 엄마의 암 병력, 믿지 못하는 마음들까지……. 삼 개월에 한 번 병원을 가다 어느 날 이제 그만 와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대학병원 검진은 6개월에 한 번이니까 거의 삼 개월마다 유방촬영을 하는 셈이다.


선생님은 너무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다 보면 과해진다고 하셨다. 또 촬영하며 쓰는 돈도 국가적 낭비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직 0기고 젊은 축에 속한다. 필요 이상의 걱정에너지를 쏟을 바에 다른 곳에 힘을 실어 살아야 했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건 병보다도 다시 아프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다. 아직도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무사할 수 있을까, 잘 살아낼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곧이어 일정을 계획하고 할 일들을 하나씩 해낸다. 오늘 할 일을 다 끝내고 눈 감을 때쯤 내일의 나를 떠올린다. 내일도 잘 살아보자고. 무서운 마음을 억누르기보단 내가 내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오늘 이쯤이면 잘 살았지 뭐”


그렇게 안심하는 연습을 한다. 살았지만 아직도 무서운 날들 속에서 아픔을 딛고 다시 살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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